최태원 "AI는 일시적 유행 아닌 산업 패러다임 변화"
"장기 공급 계약으로 메모리 산업 구조 변화…미국 투자 확대 지속"

SK그룹이 미국 자본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7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SK하이닉스 ADR(미국예탁증서) 거래 개시를 기념하는 오프닝벨 행사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어진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메모리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미국 투자 전략 등 AI 시대의 중장기 비전을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직접 설명했다.
최 회장은 인터뷰에서 "주식시장은 항상 미래를 반영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가는 거품처럼 보일 수도 있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가 가격에 선반영되는 것이 시장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AI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한 만큼 시장은 미래 성장성을 선반영하고 있으며, 결국 실질적인 산업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최 회장은 향후 투자 전략의 중심축이 미국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의 계획은 앞으로 미국에 훨씬 더 큰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AI와 첨단 반도체 산업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고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CNBC 인터뷰에서도 AI 분야에 "적어도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예상하고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 외에도 AI 데이터센터와 관련 기술, 스타트업, 합작법인(JV) 등 다양한 분야를 투자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미국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력과 용수, 인력, 공급망 등 조건이 충족된다면 미국에 건설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현재는 적합한 생산 거점을 검토하는 초기 단계"라고 설명했다.
메모리 산업의 구조 변화에 대한 진단도 눈길을 끌었다. 최 회장은 "장기 공급 계약이 확대되면서 메모리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전형적인 순환 산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고객들이 안정적인 메모리 공급을 위해 장기 계약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장기 계약을 확대하면서 메모리 산업의 변동성이 과거보다 완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AI 시대 메모리 수요에 대해서는 더욱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AGI(범용인공지능)가 실현될 때까지 메모리 시장은 정상화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의 공급 부족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AI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날 구조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고성능 메모리 수요 역시 장기간 확대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최근 AI 산업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AI 에이전트에 대해서도 "AI 에이전트의 확산은 결국 더 많은 메모리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생성형 AI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복합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AI 시스템이 늘어날수록 대용량 메모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고객사들의 반응도 전했다. 그는 "우리 고객들은 현재 계획된 생산능력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며 "시장에서는 예상보다 더 많은 메모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글로벌 AI 기업들의 투자 확대 속도가 시장 예상을 웃돌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HBM 수요 둔화 가능성에도 선을 그었다. 최 회장은 "HBM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는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며 "모든 고객이 올해와 내년 생산능력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재원에 대한 우려에는 선을 그었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와 관련한 투자 자금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며 "AI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 여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AI 확장은 지금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현재가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인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AI 인프라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선제적인 투자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자본시장 진출과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발언이 이어졌다. 최 회장은 "미국 상장을 위해 15년을 기다려 왔다"며 오랜 준비 끝에 미국 시장에 진출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ADR 규모는 좋은 성과와 수익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더욱 확대하고 싶다"고 말해 미국 투자자들과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넓혀 나갈 뜻을 밝혔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최 회장은 AI 시장의 성장성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수요 성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며 “AI 산업의 확산은 이제 시작 단계이며, 이에 따른 메모리 수요 역시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TV와 CNBC 인터뷰에서 최 회장이 일관되게 강조한 메시지는 AI가 단기적인 기술 유행이 아니라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장기적 변화라는 점이었다. 미국 투자 확대와 AI 인프라 투자, 장기 공급 계약, HBM 생산능력 확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SK그룹의 중장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발언이 SK하이닉스 ADR 거래 개시를 계기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SK그룹의 AI 전략과 향후 투자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