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헬륨·희토류 동시 압박…지정학 리스크 확대된 일본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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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3-29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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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026-03-29 5:49

호르무즈 봉쇄에 직격탄 맞은 일본 에너지 체계
전략비축유 48년 만의 시험대…일본 경제 ‘버티기 국면’
헬륨·희토류까지 흔들린 글로벌 공급망 충격
물가·경기 동시 압박…통화정책도 막힌 일본은행
“시간은 벌었지만 해결책은 없다”…지정학이 좌우하는 일본 경제

2025년 10월 이후 달러 대비 엔화 약세가 지속되며 환율이 160엔 수준까지 상승했다 / 그래픽: 유스풀피디아

일본이 중동 해상 봉쇄와 에너지·자원 공급망 충격으로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와 일본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일본 경제는 원유·헬륨·희토류에 이르는 핵심 자원의 공급 경로가 동시에 흔들리며 구조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원유 수입의 약 90% 이상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일본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비축유 방출에 착수했다. 방출 규모는 약 8천만 배럴로, 이는 일본 국내 소비 기준 약 45일 분량에 해당한다. 방출은 3월 16일부터 시작됐다.

에너지 가격도 급등했다. 일본 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0.80엔으로 상승해 199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석유화학 산업 역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나프타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서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생산이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일본 언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전쟁이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1978년 석유 파동 이후 구축한 전략비축유 시스템이 약 48년 만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원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은 헬륨 공급에서도 중동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카타르는 전 세계 헬륨 공급의 약 25~30%를 차지하는데, 이란의 공격으로 라스라판 산업단지가 타격을 입으면서 전 세계 공급의 약 14%가 차질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헬륨은 반도체 공정과 의료 장비, 양자기술 등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세계 3위 반도체 생산국인 일본 역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군사 장비 역시 공급망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본 항공자위대가 운용 중인 F-35 Lightning II 등 첨단 무기에는 희토류가 필수적으로 사용되며, 이들 자원은 대부분 중국의 가공망을 거친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가공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일본의 전략적 취약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출처: Global-Rates (일본 CPI 자료) / 그래픽: 유스풀피디아


통화정책 역시 딜레마에 빠졌다. 최근 전체 물가 상승률은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일본은행은 3월 19일 기준금리를 0.75%로 유지했으며 이는 1995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는 2.5%로 목표치를 상회하는 반면, 전체 물가는 1.6%로 둔화된 상태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 경기 위축과 물가 상승을 동시에 유발하면서 정책 대응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총 비축유는 약 4억7천만 배럴로, 수개월 분량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방출 속도가 이어질 경우 이는 장기적 완충 장치라기보다 단기적인 시간 확보 수단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주도한 약 4억 배럴 규모의 공동 방출 역시 정상적인 해협 통과 물량 기준으로는 제한적인 기간만을 충당하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외신들은 일본 경제가 세 가지 핵심 경로에 동시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원유는 호르무즈 해협, 헬륨은 카타르 시설, 희토류는 중국 공급망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들 경로가 동시에 흔들릴 경우 일본 경제는 구조적으로 대응 여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일정도 주목된다. 일본은행(BOJ)은 4월 27일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있으며, 그 사이 에너지 수급과 공급망 상황이 정책 방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외신들은 일본의 대응이 통화정책보다는 지정학적 변수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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