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무시한 ‘땅콩버터식 임금 인상’ 확산…미국 노동자들 불만 커져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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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2-0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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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026-02-02 19:57

성과 대신 동일 인상 선택한 기업들…고성과자 보상은 뒷전
2026년 앞두고 미국 기업 40% 이상 ‘일괄 임금 인상’ 검토
물가 상승률은 따라잡았지만 공정성 논란은 더 커져
형식적 성과 평가가 만든 가장 쉬운 선택
전문가 “임금 인상은 성과의 신호…일괄 지급은 조직 경쟁력 약화”

빵 위 땅콩버터는 바르기 전 높이가 다르지만, 결국 전체를 펴 바르면 균일해진다. 직원별 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모두에게 같은 임금을 주는 ‘땅콩버터식 임금 인상’을 떠올리게 한다 / 이미지: 스키피 땅콩버터 공식 계정

미국 기업들이 직원 개개인의 성과와 무관하게 동일한 임금 인상을 적용하는 이른바 ‘땅콩버터식 임금 인상’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매체 더 가디언 최근 보도를 인용하면, 이러한 방식이 고성과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땅콩버터식 성과인사란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발라버리는 보상 방식을 비꼬아 표현한 말이다.

미국 보상 관리 소프트웨어 및 데이터 제공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2026년 현재 미국 기업의 40% 이상이 전 직원에게 동일한 비율의 임금 인상을 적용하고 있거나 이를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5년 매출 목표를 초과 달성한 상위 성과 기업의 경우 이 비율은 56%까지 높아졌다.

조사 대상 기업 대부분은 2026년에 평균 3.5% 수준의 임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도와 유사한 수준이다. 다만 실제 급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는 지난해 임금 인상률이 직장 이동 여부에 따라 4.4%에서 6.5%까지 나타났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현재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약 2.7%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임금 인상이 실질 소득을 크게 끌어올린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보도는 미국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이 결코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성과 평가를 생략한 채 일괄 인상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책임 회피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특히 성과가 우수한 직원은 더 나은 보상을 받아야 하며, 성과가 낮은 직원에게는 분명한 경고와 개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는 형식적인 성과 평가 문화가 꼽혔다. 많은 기업이 성과를 체계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코칭이나 멘토링에도 소홀한 채 연례 평가를 의례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관리자와 직원 모두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제도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인사 관리 관련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직원의 65%는 성과 평가가 자신의 업무와 관련성이 낮다고 응답했으며, 관리자 역시 현재의 평가 제도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답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 다른 글로벌 조사에서는 성과 평가가 매우 공정하다고 느끼는 직원이 3명 중 1명도 되지 않았고, 평가 결과를 신뢰하는 직원은 약 29%에 불과했다.

보도는 이러한 불신이 기업들로 하여금 가장 쉬운 선택지인 일괄 임금 인상으로 도피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별 평가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피하기 위해 모두에게 같은 인상률을 적용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임금 인상이야말로 성과를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신호라고 지적한다. 직원들은 자신의 인상률이 조직 평균과 어떻게 다른지 알 권리가 있으며, 이를 통해 더 높은 성과를 추구할 동기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지속적으로 평균 이하의 평가를 받는 직원은 스스로의 위치를 인식하게 되고, 향후 인사 조치에 대해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대안으로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연 2회 성과 기반 임금 인상, 연말 성과에 따른 보너스 지급이 제시됐다. 보너스는 반드시 현금일 필요는 없으며, 추가 휴가와 같은 유연한 보상이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재정적 여력이 부족한 기업의 경우, 소폭의 임금 인상과 함께 직함 변경을 제공하는 방식도 효과적인 보상 수단으로 거론됐다.

보도는 “임금은 감사의 표현이자 성과에 대한 대가”라며, 정기적인 피드백과 공정한 보상 체계를 함께 운영하지 않는 기업은 결국 인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과 평가와 임금 인상 모두에서 ‘쉬운 길’을 선택하는 태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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