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장악 구상, ‘24시간 통치 안정’이 가늠자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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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6-01-05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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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026-01-05 5:44

‘24시간 통치 안정’이 관건…시장 신뢰 회복의 첫 시험대
세계 최대 매장량에도 생산량은 글로벌 1% 미만
노후 인프라·제재 후유증…재건에 10년·1,000억 달러 필요
셰브론만 생산 유지…미 에너지 기업들, 정치 안정성 주시
자원 장악 둘러싼 국제법 논쟁…지정학적 갈등 장기화 우려

‘HECHO EN VENEZUELA(베네수엘라산)’ 문구가 새겨진 PDVSA의 석유 수송 파이프라인. PDVSA는 베네수엘라 국가 경제를 지탱해온 핵심 국영 에너지 기업이다 / 사진출처: PDVSA 공식 X(구 트위터)

미국이 군사 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통제하고 미국 기업을 투입해 이를 재건하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에너지 산업이 수년간의 방치와 국제 제재로 심각하게 훼손된 만큼, 단기간에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AP통신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이 오랜 기간 구조적 붕괴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전하며, 생산량을 의미 있게 늘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대규모 자본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110만 배럴로, 과거 하루 350만 배럴에 달하던 역사적 고점과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패트릭 드한 가스버디 수석 석유 분석가는 “미군의 군사 작전으로 석유 인프라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의 석유 시설은 수년, 수십 년에 걸쳐 방치되며 심각하게 노후화됐다”며 “산업 전반을 재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정치적 안정이 조기에 확인될 경우, 투자 심리는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필 플린 프라이스 퓨처스 그룹 수석 시장 분석가는 “만약 미국이 향후 최소 24시간 동안이라도 베네수엘라의 국가 운영을 혼란 없이 관리하는 데 성공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여준다면,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비교적 빠르게 진입해 석유 산업을 재활성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하루라는 시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권 붕괴나 권력 공백 없이 통치가 가능하다는 최소한의 안정 신호가 확인될 경우, 시장과 기업들이 ‘정치적 리스크의 최악 국면은 지났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구상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에 미치는 즉각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석유 시장은 주말 동안 거래되지 않으며, 시장 재개 이후에도 급격한 가격 변동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으로, 현재 생산량은 이미 글로벌 공급 구조에 반영돼 있다. 또한 세계 석유 시장이 공급 과잉 상태에 놓여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단기적인 수급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약 3,030억 배럴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확인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매장량의 약 17%에 해당한다. 그러나 막대한 매장량에도 불구하고 현재 베네수엘라의 생산량은 전 세계 공급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정제 시설 전경. 외형상 대규모 인프라가 유지된 모습이지만, 장기간의 방치와 제재로 핵심 설비 다수는 정상 가동이 어려운 상태로 평가된다 / 사진출처: PDVSA 공식 X(구 트위터)


부패와 경영 실패, 미국의 대베네수엘라 제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생산량은 1999년 하루 350만 배럴에서 현재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이 자원 부족이 아니라, 정치적 불확실성과 계약 이행에 대한 신뢰 상실에 있다고 지적한다. 2007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면서 엑슨모빌과 코노코필립스 등 주요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철수한 전례 역시 투자 리스크를 키운 사례로 거론된다.

프란시스코 모날디 라이스대 라틴아메리카 에너지 프로그램 소장은 “외국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 계약 보호, 법적 예측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전망이 필수적”이라며 “현재 하루 약 100만 배럴 수준의 생산량을 400만 배럴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약 10년과 1,00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네수엘라는 디젤과 아스팔트, 중장비 연료 생산에 필수적인 중질유를 주로 생산한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산 원유에 대한 제재로 글로벌 디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베네수엘라 원유는 미국과 유럽 정유사들에게 전략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 멕시코만 연안의 정유시설은 과거 베네수엘라와 멕시코산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어, 공급이 재개될 경우 정제 효율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의미 있는 생산 활동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기업은 셰브론이 유일하다. 셰브론은 국영 석유회사 PDVSA와의 합작을 통해 하루 약 25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으며, 회사 측은 직원 안전과 자산 보호, 관련 법규 준수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베네수엘라 자원 통제를 둘러싼 문제는 국제법적 논쟁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매슈 왁스먼 교수는 “군사 점령국은 타국의 자원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취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법의 기본 원칙”이라며 “베네수엘라 석유의 실질적 소유권이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정부가 해당 자원을 정당하게 소유·관리하지 못해 왔다는 논리를 펼 가능성이 크다”며, 국제법을 둘러싼 논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장악 구상이 에너지 시장과 지정학, 국제법을 동시에 흔들 수 있는 중대 변수임에는 분명하지만, ‘24시간 통치 안정’이라는 초기 시험을 넘어서기 전까지는 시장의 기대가 실제 생산 회복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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