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철의 여인,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숨겨진 투사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마차도의 길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킨 여성, 세계의 주목을 받다
탄압과 망명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자유의 행진
가족과 국민을 위한 정치, 베네수엘라의 희망이 되다
남미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야권 정치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8세)가 2025년 노벨평화상의 영예를 안았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그녀의 끈질긴 투쟁이 베네수엘라를 ‘잔혹한 권위주의 국가’의 운명으로부터 구하려는 노력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보수 성향으로 ‘베네수엘라의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마차도는 지난해 7월 대선 이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탄압을 피해 숨어 지내고 있다.
당시 그녀가 이끄는 야권 연합은 전직 외교관 에드문도 곤살레스를 후보로 내세워 승리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마두로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정적에 대한 대대적 탄압을 벌였다. 이로 인해 곤살레스는 해외로 망명했고, 마차도 역시 잠적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믿을 수 없어요”… 숨은 곳에서 전해진 눈물의 수상 소식
더 가디언이 전한바에 따르면 마차도는 수상 소식을 들은 뒤 곤살레스가 SNS에 올린 영상 속에서 놀라움과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라고 외친 그녀에게 곤살레스는 “정말 믿기지 않아! 놀라운 일이야!”라고 답했다.
노벨위원회가 공개한 영상에는 위원회 관계자가 전화로 수상 소식을 전하자, 마차도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저는 그저 한 사람일 뿐이에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이 담겼다.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야권 인사인 페드로 마리오 부렐리는 “마차도가 매우 감동했고, 이 상이 앞으로의 투쟁에 어떤 영향을 줄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며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자유를 향한 여정의 동력”… 트럼프에게 감사 표명
마차도는 자신의 SNS ‘엑스’에 “이 상을 고통받는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그리고 우리의 대의를 결단력 있게 지지해 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친다”고 적었다. 그녀는 “이번 상은 자유를 향한 우리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원동력”이라며 “이제 우리는 승리의 문턱에 서 있다. 미국,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전 세계 민주 국가들이 함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벨위원회는 성명에서 마차도를 “최근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탁월한 시민적 용기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우며, “그녀와 야권 세력이 보여준 평화롭고 민주적인 변화를 향한 용기 있는 노력은 전 세계의 귀감”이라고 밝혔다.

“권위주의의 그림자 속에서도 민주주의 불씨 지켜”
위원회는 또한 “베네수엘라는 2013년 차베스 사망 후 마두로 집권 이래 점차 독재로 변질됐다”며 “국민 대부분이 빈곤 속에 허덕이는 반면, 소수의 권력층은 부를 독점하고 있다. 8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나라를 떠났다”고 지적했다. 마차도는 지난 20여 년간 베네수엘라 정치의 중심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싸워왔다.
마차도는 1967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엔지니어이자 기업가였던 아버지와 사회활동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사회문제와 공공정책에 관심이 많았다. 카라카스의 명문 사립학교를 거쳐 베네수엘라 가톨릭대학(UCAB)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경제정책 과정을 수료했다. 이 시절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0년대 초, 그는 시민단체 ‘수메이트’를 공동 설립해 선거 감시와 시민 참여 확대 운동을 주도하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이 단체는 훗날 베네수엘라의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핵심 세력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12년에는 고(故)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맞서며 “독수리는 파리를 사냥하지 않는다”는 조롱을 들었지만, 그때부터 그녀는 ‘체베스주의’에 맞서는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특히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돌며 시민들을 직접 만난 그녀는, 경제난과 가족 해체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가족의 상처라는 국민적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했다”고 부렐리는 전했다.


찬사와 논란 속 ‘양면의 리더’
그러나 마차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는 그녀가 과거 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점을 비판하며, 트럼프 대통령이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 등 극우 정치인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우려한다. 툴레인대학교의 베네수엘라 전문가 데이비드 스밀데 교수는 “마차도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놀라운 용기를 보여줬지만, 일부 발언은 비민주적 수단에 기댄 측면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마두로 정권 측은 노벨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하며, 마차도를 ‘라 사요나’라고 부르고 있다.
‘라 사요나’는 베네수엘라 전설 속 인물로, 남편의 부정을 벌하기 위해 나타나는 무서운 여성 유령을 뜻한다.
“이제 그녀는 상징 그 이상”… 마두로 정권 향한 압박 커질 듯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크리스토퍼 사바티니 연구원은 “이번 수상이 베네수엘라 내 여론을 자극하고, 대규모 지지 시위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두로 정부가 또다시 강경 진압에 나서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렐리 역시 “이번 노벨상은 마차도를 구속하거나 탄압하려는 시도를 차단하는 방패가 될 것”이라며 “이제 그녀는 정치적으로 ‘총알이 통하지 않는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노벨평화상 선정 과정에서도 적잖은 논란과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위원회는 올해 후보 명단에 여러 국제 인사들이 올랐으며, 그중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포함돼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 후보로 거론됐으나, 최종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현지 외신들은 “위원회가 정치적 논란보다는 민주주의와 시민 용기라는 본질적 가치에 무게를 두었다”고 전했다. 더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위원회 내부에서도 마차도의 강한 정치적 성향과 국제적 논쟁성을 두고 의견이 갈렸지만, 결국 “평화의 조건은 자유이며, 자유 없는 평화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후문이다.
현재 은신 중인 마차도는 오는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여전히 베네수엘라 내 비밀 장소에 머물며 정권의 감시를 피하고 있어, 출국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며, 참석 여부는 본인의 판단에 맡긴다”고 밝혔으며, 현지 외신들은 시상식이 대리 수상이나 사전 녹화된 영상 메시지 형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만약 마차도가 오슬로를 직접 방문한다면 귀국 시 체포 위험이 커질 것”이라며 “이번 시상식은 상징적 의미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