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갈등을 넘어 변화로 갈 수 있을까

유스풀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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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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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풀인사이트
2025-12-09 21:23

개혁의 명분보다 설득 가능한 절차가 국가 신뢰를 결정한다
공공부문부터의 변화는 개혁 진정성을 증명하는 첫 시험대
정치적 동력과 사회적 합의 사이에서 정부가 찾아야 할 균형
민감한 제도 개편일수록 법적 정당성과 투명성이 관건
국민이 체감할 때 비로소 개혁은 완성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이재명 대통령 공식 유튜브

이재명 대통령이 9일 53회 국무회의에서 내년도 국정운영의 핵심 방향으로 ‘6대 개혁’을 제시했다.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분야 전반이 포함된 이 구상은 사실상 국가 시스템 전면 재설계를 선언한 것에 가깝다. 대통령은 개혁을 “가죽을 벗기는 일”에 비유하며 불가피한 갈등과 저항을 언급했는데, 이는 단순한 정책 과제를 넘어 정치적 결단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다만, 이미 사회적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런 발언이 실제 정책 추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방법론에 달려 있다.

이번 발언 가운데 가장 뚜렷한 울림을 준 대목은 공공부문 노동 관행에 대한 지적이다. 대통령은 공공기관과 지방정부가 비정규직·단기 노동자에게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만 지급하는 현실을 문제 삼으며, “최저임금은 그 이하로 주지 말라는 기준이지 그 수준만 주라는 뜻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도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는 구조, 1년 미만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계약을 반복 종료하는 관행 등을 ‘정부의 부도덕’으로 규정한 표현 또한 이례적이었다. 이는 민간과 달리 공공부문이야말로 노동 기준 개선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런 지적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안은 도덕적 비판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공공부문 예산 구조, 인사·고용 체계, 관련 법령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질적 개선에는 상당한 제도적 조율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강한 메시지가 선언적 의지에 머물지 않고 제도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노동부를 비롯한 각 부처가 이를 얼마나 일관되고 세밀하게 집행할 수 있을지가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내란·외환 사건 전담 재판부 설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회와 정부가 국민의 뜻을 기준 삼아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입법 추진 의지는 유지하되 위헌 논란을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그러나 사법부 독립과 권력분립이라는 헌정 원칙이 걸린 사안인 만큼, 명분이 아무리 신속성과 전문성에 있다 하더라도 정치적 의도나 개입으로 비쳐질 위험은 여전하다. 결국 핵심은 법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 그리고 특정 정치세력에 유·불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견제 장치를 촘촘히 설계하는 데 있다.

종합해 보면 이번 ‘6대 개혁’ 구상과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들은 방향성 자체로만 보면 특정 이념을 넘어 오랫동안 제기돼 온 국가적 과제들과 맞닿아 있다. 연금, 공공부문, 노동시장, 규제 개혁 등은 어느 정부든 외면할 수 없었던 숙제였다. 그러나 개혁은 ‘무엇을 바꾸느냐’보다 ‘어떻게 바꾸느냐’에서 진정성이 판가름난다. 갈등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그 갈등이 신뢰 기반의 민주적 절차 속에서 조율되는지, 아니면 충돌을 감수한 밀어붙이기식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국민의 체감은 크게 달라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혁의 당위성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추진 방식과 투명한 절차를 마련하는 일이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 현실 개선처럼 정부가 스스로의 기준을 먼저 높이려는 방향은 개혁의 신뢰를 높이는 긍정적 신호다. 반면 사법·종교·노동처럼 민감한 영역에서는 강경한 접근이 또 다른 사회적 균열을 불러오지 않도록 절제되고 정교한 조율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말한 “국민의 삶 속에서 국정 성과가 몸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표현은 개혁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개혁은 선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실질적 변화를 체감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국가 대도약’이 정치적 수사에 머물지 않고 지속 가능한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강한 드라이브만큼이나 사회적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방향을 정하는 결심보다, 그 길을 어떤 방식으로 걸을 것인가가 더 많은 것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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