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종료 선언과 별개로 해상 보험 공백 장기화 가능성
호르무즈 해협 운항 재개 핵심 변수는 정치가 아닌 보험 규제
EU ‘솔벤시Ⅱ’ 자본 규제에 전쟁 위험 보험 사실상 중단
휴전 이후에도 장시간 이어질 수 있는 해상 보험 공백
시장은 전쟁보다 재보험 정상화 시점을 유가에 반영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현지시간 3월 9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부 참모들이 이란과의 군사 충돌과 관련해 출구 전략을 보다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비공개적으로 조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급등한 국제 유가와 장기전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우려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진행 중인 군사 작전에 대해 “작전이 매우 완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초기 계획보다 일정이 앞서 있다”고 밝혔다. 또한 현지시간 9일 CBS 인터뷰에서 “전쟁이 거의 끝났다”고 언급했다. 백악관 역시 상황에 특별한 긴급성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유가는 이날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때 배럴당 119달러까지 치솟았던 유가는 주요 7개국(G7)의 전략 비축유 방출 논의, 트럼프 대통령의 긴장 완화 발언, 그리고 이란 혁명수비대가 조건부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가능성을 시사한 영향으로 94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유가 움직임만 놓고 보면 출구 전략을 주장하는 참모들의 논리가 일정 부분 힘을 얻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접근이 실제 경제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가는 정치적 발언이나 뉴스 헤드라인에 빠르게 반응한다. 반면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다시 상업적으로 정상 운항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보험과 금융 규제 체계다. 해협이 다시 열릴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런던에 있는 해상 상호보험(P&I) 클럽들의 규제 대응이다.
실제로 지난 3월 5일 런던의 주요 7개 P&I 클럽은 해상 전쟁 위험 보험 인수를 중단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전쟁 위험 확대에 따른 보험사의 리스크 관리와 함께 유럽연합(EU)의 보험 건전성 규제 체계인 ‘솔벤시Ⅱ(Solvency II)’ 등 자본 규제 부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솔벤시Ⅱ는 보험사가 극단적인 손실 상황에서도 지급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본 규모를 계산하도록 하는 규제다. 특히 전쟁과 같은 고위험 보험에는 높은 자본 부담이 적용된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전쟁 위험과 같은 고위험 보험의 경우 보험사는 일반 보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추가 자본을 요구받는 구조다.
여기에 1년 기준 99.5% 신뢰수준의 위험가치를 적용하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유 수송 통로이면서 동시에 실제 군사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해협에서 보험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규제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수준의 위험으로 계산된다. 이 때문에 전쟁이 진행 중인 해역에서는 보험사의 위험 부담이 급격히 커져 보험 인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보험사들의 결정에는 정치적 상황뿐 아니라 전쟁 위험 확대와 자본 규제 등 금융·보험 구조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보험이 다시 제공되기 위해서는 지급여력 자본 요건이 다시 낮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협 주변에서 발생하는 공격, 미사일 발사, 드론 요격, 선박 피격과 같은 사건의 발생 빈도가 충분히 감소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위험 지표가 정치적 선언과 동시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전쟁 종료를 선언하거나 휴전이 이루어지더라도 해역 내 군사 충돌이 끝난 후에도 보험사가 손실과 위험을 계산하는 모델이 안정적으로 다시 계산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해상 보험 업계에서는 전투 종료 후에도 위험 평가가 안정적으로 재조정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정치적 차원의 전쟁 종료와 경제적 정상화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 차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브렌트유 가격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이러한 구조적 요인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약 20달러 이상 수준의 추가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는데, 이는 단순한 전쟁 프리미엄이라기보다 해상 보험과 재보험 시장의 불확실성을 반영한 가격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브렌트유(USD/BBL)는 90.15달러로 전일 대비 8.81달러 하락했고,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USD/BBL)도 86.60달러로 8.17달러 하락했으나, 두바이유(USD/BBL)는 107.55달러로 8.41달러 상승했다. 이는 브렌트·WTI가 단기 정치 뉴스와 시장 헤드라인에 반응해 가격이 내려갈 수 있는 반면, 두바이유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실제 공급과 보험·운항 제약이 지속되는 상황을 반영해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시장은 전쟁이 언제 끝날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험 체계가 언제 정상화될지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으로는 출구 전략을 통해 군사 충돌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해상 보험이 복구되지 않는 한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상업적 운항은 상당 기간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전쟁에는 정치적 출구가 있을 수 있지만, 보험과 금융 규제가 만들어낸 구조적 위기는 훨씬 더 긴 시간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