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ETF·반도체 쏠림 심화
개인투자자 신용투자 확대에 미국 증시도 위험 노출

한국 증시를 뒤흔든 인공지능(AI)·반도체 투자 열풍발 변동성이 미국 월가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20일(현지시간) 시장 분석 칼럼을 통해 미국 증시도 기술주 쏠림과 레버리지 투자 확대에 따른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진단했다.
최근 한국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한 급격한 주가 조정이 고배율 레버리지 투자와 개인투자자들의 공격적인 매매가 결합되면서 시장 변동성을 크게 키웠으며, 이와 유사한 구조가 미국 증시에서도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AI 수혜 기업 비중이 높은 코스피지수는 한 달 전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했으며, 일일 4% 안팎의 급등락이 반복되는 등 변동성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금융당국은 급격한 가격 변동을 억제하기 위한 시장 안정 조치를 강화했다. 이번 변동성 확대의 배경에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적극 활용한 개인투자자들의 공격적인 매매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투자 열풍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이 주가 급락과 반대매매에 직면하면서 시장 충격이 한층 커졌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 7월 13일 기준 한국에서 약 120만 개 이상의 레버리지 투자 계좌가 마진콜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약 32만~36만 개 계좌는 강제 청산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한국 성인 인구 약 30명 가운데 1명꼴로 마진콜을 경험한 수준이라는 게 골드만삭스의 분석이다.
이 같은 손실이 단순히 금융시장에만 그치지 않고 가계 자산 감소를 통해 소비와 경기에도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장기 투자자들은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단기 투자자들은 상당한 손실을 떠안았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현상이 미국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역시 최근 개인투자자의 시장 참여가 크게 늘어난 데다 AI와 반도체 관련 종목에 투자 자금이 집중되고 있으며, 레버리지 ETF 시장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타델증권의 스콧 루브너를 인용한 로이터통신은 미국 레버리지 ETF 운용자산 규모가 최근 2,18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이는 지난 3월 말 이후 약 60% 증가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기술주 관련 레버리지 ETF 규모는 같은 기간 136% 늘었고, 반도체 관련 레버리지 투자 규모는 약 세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기술주와 반도체 관련 상품이 미국 전체 레버리지 ETF 자산의 약 6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증시 역시 소수 대형 기술주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루브너에 따르면 S&P500에 유입되는 투자자금 가운데 약 19%는 반도체 기업으로 향하고 있으며, 약 33%는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 대형 기술주에 집중되고 있다. 상위 10개 종목이 전체 자금의 약 40%를 차지하는 등 소수 종목에 대한 투자 쏠림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투자회사 언리미티드의 밥 엘리엇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현재 시장은 투기적 자금이 과도하게 집중된 상태"라며 "레버리지는 상승장에서는 수익을 키우지만 하락장에서는 손실도 같은 속도로 확대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투자심리가 악화될 경우 기술주뿐 아니라 다른 자산시장도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미국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는 한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됐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레버리지 ETF 자산이 미국 전체 ETF와 뮤추얼펀드 자산의 1%에도 미치지 않아 금융 시스템 전반을 위협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의 레버리지 투자 확대는 미국 시장에서도 뚜렷한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2021년 이후 미국에서는 레버리지 지수 ETF의 개인투자자 거래 비중이 일반 지수 ETF보다 약 두 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와 로빈후드, 찰스슈왑 등 주요 증권사의 고객 신용거래 잔액도 올해 고객 자산 대비 1.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미국 금융산업규제기구(FINRA)에 등록된 전체 증권사의 마진대출 잔액은 올해 약 1조3천억 달러로 늘어나 전체 고객 잔액의 52%에 달했다고 골드만삭스는 분석했다. 이는 관련 통계상 최고 수준으로, 1998년 세워진 종전 기록을 6%포인트 웃돈다. 다만 해당 통계에는 기관투자자 자금과 공매도 포지션을 위한 차입도 포함돼 있다.
최근 반도체 업종 조정은 이러한 레버리지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가 각각 최근 고점 대비 약 2%, 7% 하락하는 데 그친 반면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고점 대비 약 25% 급락하며 기술적 약세장에 진입했고, 30일 실현 변동성도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다만 미국 증시의 규모와 유동성을 감안할 때 이번 반도체 조정이 금융위기나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그러나 AI와 반도체에 집중된 레버리지 투자와 개인투자자의 높은 위험 노출은 향후 시장 변동성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한국에서 나타난 레버리지 투자와 기술주 쏠림 현상이 미국에서도 반복될 경우 시장 변동성이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는 것이 로이터통신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