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우주·원전으로 확장되는 ‘미래 기술 동맹’의 실체
경제협력에서 기술공동체로…한·UAE 관계의 질적 전환
자본과 기술이 만날 때 만들어지는 새로운 국제협력 모델
바라카 성공 이후, 한국 원전 외교의 두 번째 도약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AI·우주 산업의 전략적 가교를 향해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아부다비 정상회담을 계기로 7건의 양해각서(MOU)를 연달아 체결하며 협력의 지평을 다시 그렸다. 이번 합의는 흔히 말하는 ‘산업 협력 확대’라는 교과서적 표현으로 설명하기엔 그 폭과 깊이가 사뭇 다르다. AI·우주·바이오·원자력 신기술까지, 미래 산업의 핵심 축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는 양국이 단순한 경제 파트너에서 미래 기술 공동 생태계를 구축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뜻한다.

인공지능 분야 협력은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 구축, 산업별 AI 전환, 연구개발과 인력 교류, 투자 촉진까지 협력의 범위가 ‘AI 산업의 풀 스펙트럼’을 관통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UAE가 AI 기술을 단순히 상호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공동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글로벌 AI 경쟁이 ‘데이터·인프라·컴퓨팅 파워’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은 기술력과 산업응용 역량을, UAE는 대규모 자본과 전략투자 의지를 갖고 있다. 양국의 결합은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하나의 ‘AI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우주 협력 역시 상징성이 큰 분야다. 달·화성 탐사 경험, 인공위성 공동개발, 지상 인프라 구축 등은 단순 실험 프로젝트를 넘어 우주 산업의 실제 시장 진출을 겨냥한 협력이다. UAE는 이미 화성 탐사선 ‘아말’ 프로젝트를 통해 중동 최초의 행성 탐사국으로 도약했고,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위성·발사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양국의 이해와 기술이 맞물릴 경우, 한국은 중동 우주 시장의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원전 협력 확대도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한 성과다. 한국전력과 UAE원자력공사(ENEC)는 소형모듈원자로(SMR)·AI 기반 원전 운영 기술·전문 인력 양성·제3국 공동진출을 포함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는 바라카 원전 성공 사례가 새로운 글로벌 시장 개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제3국 공동진출은 한국 원전 산업이 단순한 ‘수주 경쟁자’를 넘어 파트너십 기반의 글로벌 확장 모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구조적 변화를 시사한다.
이번 합의에는 지난해 발효된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운영을 본격화하기 위한 행정 협력도 포함됐다. 자유무역·기술 협력·산업 구조 고도화를 아우르는 CEPA는 양국 관계를 제도적으로 묶는 장치다. 이번 협력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닌 장기적·구조적 파트너십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전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100년”을 언급한 것은 다소 정치적 표현일 수 있으나, 이번 MOU의 내용을 보면 단순 수사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한국과 UAE는 이미 투자·방위·원전·에너지라는 4대 협력축을 갖고 있었고, 이번 체결은 그 위에 AI·첨단기술·보건·바이오·문화·우주 등 새로운 협력 분야가 결합된 형태다. 협력의 결이 바뀌고 있다. 분야의 확장이 아니라 협력 패러다임 자체의 진화다.
이번 한·UAE 협력 체계는 ‘미래 기술 중심의 국가 간 동맹’이 어떤 방식으로 구축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델이다. 한국은 기술력과 산업화 역량을, UAE는 자본·국가 전략·시장 확장성을 앞세워 상호 보완적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세계가 기술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선 지금, 이번 협력은 단순한 MOU 7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양국이 미래 산업의 지형을 함께 설계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 확대가 곧바로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대규모 MOU는 종종 정치적 상징성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AI·우주·SMR 등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실행 속도와 규제, 비용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조정 과정이 남아 있다. 특히 UAE와의 기술 협력이 중장기적으로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구조를 만들 경우, 국내 산업 생태계의 균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제3국 원전 공동진출이나 AI 인프라 구축 같은 고위험 프로젝트는 국제 정치와 시장 변동성에 직접 영향을 받는다. ‘속도보다 안전성’과 ‘의지보다 체계’가 우선돼야 하며, 정치적 성과를 넘어 면밀한 사업성 검토와 책임 있는 이행 구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실질적 파트너십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양국이 미래 산업의 지도 위에서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지는 세밀한 전략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