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 "메모리도 장기계약 시대"…AI가 바꾼 반도체 거래 공식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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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6-2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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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마켓
2026-06-25 22:21

현물거래 중심 시장서 장기 공급계약 체제로 전환
최소 1,000억달러 계약·테이크 오어 페이 구조 확산

마이크론 연구원이 차세대 메모리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장기 공급계약을 기반으로 생산능력 확대와 차세대 메모리 생산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 사진: 마이크론(Micron) FQ3 2026 Financial Results

마이크론은 이번 2026회계연도 3분기(FQ3) 실적 발표에서 사상 최대 실적보다 더 중요한 변화로 '메모리 산업의 계약 구조 전환'을 제시했다. 회사는 AI 시대를 맞아 메모리 시장이 기존 현물 거래 중심의 경기순환 산업에서 장기 공급계약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공급과 수익성을 확보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AI 인프라 확산으로 메모리가 단순 범용 부품을 넘어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으면서 반도체 산업의 거래 방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이크론은 현재 체결한 전략적 고객계약(SCA)이 DRAM 생산량의 약 20%, NAND 생산량의 약 30%를 대상으로 하며 계약 기간 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약 25%를 이미 커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계획된 계약까지 모두 체결될 경우 고정가격 또는 가격 상한이 적용되는 계약 비중은 전체 매출의 약 40%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메모리 제조사가 시황과 가격 변동에 따라 실적이 크게 흔들리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는 의미다.

회사는 현재 체결된 계약을 가격 하한 기준으로만 산정해도 잔여 계약 기간 동안 최소 계약 규모가 약 1,000억달러(약 154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최소 구매 물량과 최소 계약 가격만 반영한 보수적인 수치로 실제 매출 전망치가 아니라 계약상 의무적으로 보장되는 최소 규모다. 향후 시장 가격이 계약 상한 수준에서 형성될 경우 실제 인식 매출은 이보다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건설 중인 마이크론 미국 아이다호 ID1·ID2 팹 클러스터. ID1은 2027년 중반, ID2는 2028년 말 첫 웨이퍼 생산을 목표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으며, 대규모 신규 팹 건설과 첨단 공정 전환, 클린룸 확충, 숙련 인력 확보 등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메모리 공급 부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 같은 공급 제약은 고객들이 장기 물량 확보에 나서도록 만들고 있으며, 가격 하한과 구매 의무를 포함한 계약 조건이 마이크론에 유리하게 형성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 사진: 마이크론(Micron) FQ3 2026 Financial Results


이번 계약 구조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가격 결정 방식이다. 대형 고객 대부분은 가격 하한과 상한을 함께 설정하는 '프라이스 밴드(Price Band)' 구조를 적용하고 있다.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고 시장 가격이 상승하면 계약 상한 범위 안에서 가격이 조정되는 방식이다. 회사는 현재 상한 가격이 대부분 올해 2분기 시장 가격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고객은 가격 변동성을 줄이고 공급사는 과거 메모리 업황 침체기와 같은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방어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계약의 성격 역시 기존 공급 예약과는 차이가 있다. 마이크론은 SCA가 단순한 우선 공급권이 아니라 고객이 계약된 최소 물량을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테이크 오어 페이(Take-or-Pay)'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공급사 역시 해당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상호 구속력을 갖는다.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메모리 확보가 기업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공급 계약과 함께 재무적 약정을 병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체결된 계약과 관련한 고객 예치금 및 금융 약정 규모는 약 220억달러(약 34조원)다. 이 가운데 약 180억달러(약 28조원)는 현금 예치금이며 나머지는 금융 약정으로 구성된다. 회사는 해당 자금이 매출 선급금이 아닌 사용 제한이 없는 현금(Unrestricted Cash) 으로 분류돼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계약이 이행되면 예치금은 고객에게 순차적으로 반환되는 구조인 만큼 장기적인 유동성 관리가 병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약 기간도 이전보다 크게 길어졌다. 일반적인 SCA 계약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약 5년 동안 유지되며 자동차 고객은 약 3년 계약이 일반적이다. 현재 체결된 16건의 계약에는 초대형 고객 4곳과 중형 고객 3곳이 포함돼 있으며 나머지는 자동차 산업 중심의 고객으로 구성됐다. 회사는 모든 계획된 계약이 완료될 경우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장기 공급계약 기반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이번 발표를 메모리 산업이 경기순환 산업에서 계약 기반 산업으로 전환되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AI 시대에는 메모리를 얼마나 저렴하게 구매하느냐보다 필요한 시점에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 계약과 금융 약정이 확산되면서 메모리 시장은 가격 중심 경쟁에서 공급 신뢰성과 장기 파트너십 중심의 시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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