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저축만으로는 실질 구매력과 자산 가치를 지킬 수 없는 나라”

유스풀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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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2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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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풀인사이트
2026-01-20 21:51

통장은 불어나는데, 살 수 있는 삶은 줄어든다
통화 팽창 시대, 저축은 미덕이 아니라 착각이 됐다
4천조 코스피의 진실: 부의 축적이 아니라 위험의 집적
원화 약세와 빚투가 만든 방어적 상승장
선택하지 않아도 비용을 치르는 경제 구조

한국 사회에서 저축은 오랫동안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성실하게 일해 번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면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믿음은 세대를 거쳐 내려온 상식이었다.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은 안정의 증거였고, 미래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였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 이 믿음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문제는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돈이 작동하는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2020년 이후 한국의 통화량(M2)은 연평균 약 7% 내외로 증가해 왔다.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시기를 지나면서도 통화는 줄지 않았고, 그 결과 명목 GDP 대비 통화량 비율은 150%대를 상시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주요국 가운데서도 이례적인 수준이다. 비기축통화국이면서, 통화량은 많고, 줄이지도 못하는 구조다.

통화가 늘어나면 화폐 한 단위의 구매력은 떨어진다. 이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에 한국은 또 하나의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다. 환율이다. 최근 수년간 원화는 달러 기준으로 지속적인 약세를 보였다. 이는 단순한 환율 변동이 아니라, 원화의 국제적 구매력이 함께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원화 보유자는 두 번 손해를 본다. 국내에서는 통화 희석으로, 대외적으로는 환율 하락으로 가치가 깎인다. 이중 손실이다. 이 구조를 수치로 환산하면, 원화의 실질 구매력은 연간 약 10% 내외로 감소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이를 단순한 체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은 이미 국제 경제 담론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이러한 하락이 복리로 누적될 경우, 그 결과는 더욱 명확해진다. 지금의 100만 원은 5년 뒤 약 58만 원 수준의 구매력으로 줄어들고, 10년 뒤에는 약 34만 원 정도의 가치만 남는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유지될 수 있다. 이자도 붙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삶의 범위는 해마다 줄어든다.

그래서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확실히 잃는다.
아니면 변동성을 감수하고 방어를 시도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개인이 이 구조적 위험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단순히 진단에 그친다면 문제의식만 남길 뿐, 현실적인 출구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 방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부 자산을 달러나 유로 등 기축통화 기반 외화 자산으로 옮기면 원화 약세와 환율 변동으로부터 구매력을 일정 부분 방어할 수 있다. 동시에 방어적 산업이나 달러 수익과 연결된 업종 중심으로 주식이나 ETF에 분산 투자하면, 단순히 통장에 저축만 해두는 것보다 실질적인 자산 가치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여기에 물가연동국채나 인플레이션 보호형 ETF와 같은 채권 상품을 병행하면 화폐 가치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

또한 빚투를 줄이고 변동금리 대출을 조기 상환하는 등 레버리지를 최소화하며 부채 구조를 관리하면, 시장 조정 국면에서 신용 위험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활비용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장기 투자 자금과 분리해 현금과 자산의 비중을 조절한다면, 예기치 못한 변동성에도 보다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 환경에서 최근의 주식시장 급등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이야기한다. 코스피는 4,000포인트를 넘어섰고, 시가총액은 4,000조 원을 돌파했다. 5,000포인트, 이른바 ‘오천피’도 가시권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질문은 이것이다. 코스피가 5,000이 된다고 해서, 국민의 실질 부가 2배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지금의 상승은 경제 전반의 성장 랠리라기보다, 특정 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방어적 집중’에 가깝다. 반도체, 일부 대형주, 달러 수익과 연결된 업종으로 쏠림이 극단화되고 있다. 이는 낙관의 결과가 아니라 불안의 결과다. 투자자들도 무의식적으로 원화 리스크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저축이 부를 지켜주지 못하는 환경에서, 주식은 선택이 아니라 이동 경로가 된다. 문제는 이 이동이 건강한 자금 이동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 시장으로 들어오는 돈은 “남는 돈”이 아니다. “버티기 위해 끌어온 돈”이다.

이 장세를 구성한 자금의 성격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답은 명확하다.
생산성 증가로 벌어들인 돈인가? 아니다.
기업 이익이 구조적으로 확장된 결과인가? 아니다.
통화 팽창, 원화 가치 하락, 그리고 레버리지다.

그래서 시가총액 4,000조 원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 4,000조가 어떤 돈으로 만들어졌는지가 더 무섭다. 부가 쌓인 것이 아니라, 위험이 쌓였다. 그리고 이 위험은 하락이 시작될 때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전가된다. 빚으로 들어온 자금, 빠질 수 없는 돈, 생활과 섞인 투자금이 많을수록 조정은 가격 조정이 아니라 신용 문제로 번진다.

이 글은 저축을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저축은 여전히 필요하다. 안전망이고, 유동성이고,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 저축은 더 이상 부를 보존하는 수단이 아니다. 최소한의 방어선일 뿐이다.

문제는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구조다. 통화는 계속 늘고, 화폐 가치는 계속 깎이며, 그 부담은 조용히 개인에게 이전되고 있다.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아도, 이미 선택의 결과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저축만 하면 가난해지는 나라.

이 말은 과장이 아니라, 현재 한국 경제 구조가 개인에게 던지고 있는 냉정한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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