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32배 부담…인프라 리스크 다시 부상

이성철 기자
Icon
입력 : 2025-12-10 17:48
Icon
국내이슈
2025-12-10 22:35

용인 클러스터 전력 수용 능력 한계 부상
정부 추진 속도와 전력 인프라 현실의 괴리
탄소중립·RE100 정책 충돌 가능성 제기
반도체 산업 특성상 초고신뢰 전력망 요구
입법조사처, 전력 리스크 개선책 4가지 제안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반도체 경쟁이 기업 간 싸움을 넘어 이제는 국가 간 전쟁 수준으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장관은 중국을 ‘서부 전선’으로, 미국을 ‘동부 전선’으로 비유하며, 중국이 100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있고, 미국은 530억 달러, 일본은 60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조 원, 즉 약 20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러한 격차가 우리를 점점 포위하는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 이재명 대통령 공식 유튜브

SK하이닉스가 600조 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K-반도체의 성장 전략이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오늘 정부는 AI 시대 K-반도체 비전 및 육성 전략 보고회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개최하고, 2047년까지 700조 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공장 10기를 신설하고, 메모리 초격차 유지와 AI 특화 반도체 R&D 확대, 팹리스 산업 규모 10배 확대 등 대규모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보고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전력 수급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16GW 정도가 필요하냐”고 질문하자 SK하이닉스 측은 “약 15GW 정도 필요하다”고 답변했고, 대통령은 “1기가 줄었네”라고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전환했다. 그러나 농담에도 불구하고, 산업계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확보가 여전히 전체 수요의 60%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산업단지 정상 가동과 향후 팹 증설 계획에 큰 불확실성을 남긴다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전력망 부족이 투자 규모와 산업 확장 속도에 비해 지나치게 뒤처져 있다고 강조하며 정부의 신속한 인프라 구축을 요청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최근 발표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리스크 진단」 보고서를 통해 해당 산업단지가 직면한 전력 기반의 기술적·사회적·정책적 리스크를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용인 클러스터는 11.25㎢의 면적에 약 21GVA 규모의 전력 설비가 필요해 서울(605㎢, 35GVA) 대비 전력 밀도가 32배에 달하며, 이러한 초고밀도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분석됐다. 더불어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두 개의 설비가 동시에 고장이 나도 전력 공급이 중단되지 않아야 하는 N-2 신뢰도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계획보다 훨씬 강화된 전력망 이중화와 예비 전력 확보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과 관련된 구조적 어려움으로 변전소 부지 부족, RE100 산업단지 계획과의 연계성 부재, 한전의 재정부담과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싼 지역 주민 반발 가능성, 그리고 국가 탄소중립 정책과의 충돌을 꼽았다. 특히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가 향후 국내 최대부하의 약 17%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화석연료 중심으로 공급할 경우 국가 탄소중립 전략을 크게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로 언급됐다.

입법조사처는 이러한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전력품질 유지를 위한 전담 DOS 설치, RE100 이행을 위한 인증 시장 재구축, 지자체와 주민을 위한 보상체계 마련, 그리고 변전소·송전선로의 이중화를 포함한 전력망 신뢰도 강화 등 네 가지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반도체 산업은 1분의 정전만으로도 수십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산업단지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사업자가 전력망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실질적인 대응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결국 AI 시대의 K-반도체 전략은 전력 인프라의 안정성과 직결되며,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초대형 투자가 이어지더라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산업계와 정책 연구기관 모두에서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다른 뉴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