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글로벌 알루미늄 공급망 압박
알루미늄, 에너지 전환 산업 핵심 원자재
중동 생산 차질, 글로벌 가격 급등
재고 감소와 러시아산 알루미늄 변수
반도체 산업 공급망도 영향권

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 산업국의 알루미늄 공급망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와 건설, 포장재는 물론 재생에너지 설비와 전력망 구축 등 에너지 전환 산업에도 널리 사용되는 알루미늄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전략적 핵심 원자재로 관리하는 금속이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반영되면서 글로벌 알루미늄 가격이 상승 압력을 받고 있으며,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공급 차질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중동 지역의 생산 차질이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카타르의 카탈룸 제련소는 전력 공급 문제로 가동을 일부 축소했으며, 바레인의 알루미늄 업체 알바(Alba)는 불가항력 선언을 통해 생산 차질을 공식화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시장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중동 걸프 지역은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알루미늄 공급의 약 23%를 차지하는 핵심 생산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의 생산 차질이 지속될 경우 글로벌 알루미늄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최근 알루미늄 가격은 톤당 3,425달러까지 상승하며 약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알루미늄 재고 감소 역시 시장 불안 요인으로 지목된다. 런던금속거래소의 일일 재고 보고서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포트클랑 창고에서는 올해 1월 초부터 매일 약 2천 톤 규모의 알루미늄이 지속적으로 반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금속을 창고에 보관하며 금융 수익을 얻는 이른바 ‘창고 거래’가 활발해 금속이 창고 안팎으로 반복 이동하는 구조가 형성됐고, 이 때문에 재고 지표만으로 실제 공급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실제로, 거래소 자료를 종합하면 전체 재고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대 초 약 300만 톤 수준이던 알루미늄 재고는 올해 2월 말 기준 58만3천 톤까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되며, 이는 거래소가 창고 외 재고 자료를 공개하기 시작한 202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또한 현재 재고의 상당 부분이 러시아산 알루미늄이라는 점도 변수로 지목된다. 런던금속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등록 재고의 약 58%가 러시아산으로 집계됐다. 미국과 영국은 2024년 러시아산 알루미늄 수입을 금지했으며 유럽연합도 유사한 조치를 시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알루미늄 물량은 공식 재고보다 더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국인 중국의 생산 증가 둔화도 시장 구조 변화의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알루미늄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정부가 정한 연간 생산능력 상한선 약 4,500만 톤에 가까워지면서 생산 확대 여력이 제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알루미늄 생산 증가율은 2024년 4%에서 지난해 2% 수준으로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의 무역 흐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러시아 등에서 원알루미늄 수입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중국의 원알루미늄 수입량은 250만 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합금 수입도 100만 톤 이상 증가했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 유럽 시장으로 공급하던 반제품 형태의 알루미늄 수출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튜브와 판재, 포일 등 반가공 제품 수출은 2025년 약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의 알루미늄 생산 확대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알루미늄 제련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으로 전력 가격이 생산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미국과 유럽에는 가동이 중단된 제련소들이 일부 존재하지만 재가동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장기 전력 공급 계약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데이터센터 산업 확장으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알루미늄 제련 산업이 필요한 장기 전력 확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호주 광산 기업 사우스32는 모잠비크 알루미늄 제련소에서 경제성이 맞는 전력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면서 해당 공장을 유지·관리 상태로 전환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은 알루미늄뿐 아니라 반도체 산업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 정보기술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헬륨과 브롬 등 일부 산업 소재 역시 중동 지역 의존도가 높다고 보도했다.
특히 카타르는 세계 헬륨 생산의 약 38%를 차지하는 주요 공급국으로, 가스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도 파장이 확산될 수 있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장비 온도 조절과 누출 감지, 공정 안정성 유지 등에 사용되는 핵심 가스로 대체 소재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에서 물류 차질이 발생할 경우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산업용 가스와 석유화학 소재 운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 생산시설은 대규모 전력과 냉각 설비가 필요한 만큼 에너지 가격 상승 역시 생산 비용 증가 요인이 될 수 있다.
알루미늄은 건설과 자동차, 식품 포장 등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되는 핵심 금속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설비와 전력망 구축 등 에너지 전환 산업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평가된다. 세계은행은 2020년 보고서에서 알루미늄을 모든 녹색 에너지 기술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금속 가운데 하나로 지목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알루미늄 시장이 장기간 이어진 공급 과잉 국면에서 점차 공급 악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이란 전쟁으로 중동 지역의 생산 차질과 글로벌 재고 감소가 겹치면서,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 산업국의 제조업 공급망에도 간접적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고 감소와 생산 제약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에서 알루미늄 가격 변동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번 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의 구조적 악화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