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팔아 북한에 4억 달러…미군 피해자들 BAT 상대 소송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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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31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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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026-01-31 0:37

북한 담배 합작으로 수백억 달러 유입 의혹
제재 알면서도 사업 지속했다는 주장
테러 피해 미군과 유가족 집단 소송
북한 자금이 중동 무기 공격으로 연결됐나
다국적 기업의 테러 자금 책임 쟁점 부상

사진출처: 나디아 콜로 감독의 거대 담배 산업의 유통, 동영상 캡처

영국 매체 더 가디언은(현지시간 30일) 세계 최대 담배회사 중 하나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을 사실상 지원해 왔으며, 그 결과 미국인을 겨냥한 중동 지역 테러 공격에 사용된 무기 개발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내용의 대규모 민사소송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군인과 민간인, 유가족 등 수백 명은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와 그 자회사를 상대로 연방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은 이 회사가 북한 국영 담배회사와의 합작 사업을 통해 수년간 제재를 위반하며 북한 정권에 막대한 외화를 제공했고, 이 자금이 테러 조직에 전달돼 무기 개발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는 2001년 북한 기업과 합작 회사를 설립해 현지에서 담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켄트, 던힐, 럭키 스트라이크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담배 브랜드가 일부 북한 합작 공장에서 생산됐다. 이후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 자금 지원국으로 지목하고 강력한 제재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업은 비공식적으로 지속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2007년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회사 측은 북한에서 철수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자회사를 통해 사업을 계속 운영한 사실이 2023년 미국 사법당국 조사에서 드러났다.

미국 법무부는 이 합작 사업을 통해 약 4억 1,800만 달러 규모의 금융 거래가 이뤄졌으며, 이 자금이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을 진전시키는 데 사용됐다고 밝혔다. 결국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는 2023년 제재 위반과 은행 사기 혐의와 관련해 기소 유예 합의에 응했고, 자회사와 함께 총 6억 2,900만 달러의 벌금을 납부하기로 했다. 당시 최고경영자는 과거의 위법 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내부 준법 및 윤리 시스템을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제기된 민사소송은 테러 피해자가 직접 가해 조직뿐 아니라 테러를 도운 제3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연방법에 근거하고 있다. 원고 측 법률대리인은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의 북한 내 은밀한 사업과 실제 테러 공격에 사용된 무기 사이에 명확한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소장에 따르면 북한은 담배 제조와 밀수로 얻은 수익을 이란 혁명수비대와 헤즈볼라에 무기 형태로 제공했으며, 이 무기들이 2020년 1월 8일 이라크의 알 아사드 공군기지와 에르빌 공군기지를 공격하는 데 사용됐다. 이 공격으로 100명 이상이 외상성 뇌손상을 진단받았고, 2022년 쿠르디스탄 지역 미사일 공격에서는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원고에는 이 공격으로 외상성 뇌손상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은 약 200명의 미군 장병과, 2022년 공격 당시 난민을 돕다 사망한 민간인의 유가족이 포함돼 있다. 가족 구성원 중 일부도 정신적 피해를 이유로 소송에 참여했다.

소장은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가 북한과의 불법 합작이 테러 자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거나 최소한 중대한 위험을 무시한 채 사업을 지속했다고 주장한다. 회사 내부 인력이 미국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를 면밀히 검토했으며, 담배 밀수가 테러 자금 조달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편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3년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테러 조직의 활동을 방치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연방 항소법원은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뇌물을 제공해 계약을 따냈다는 의혹을 받는 제약회사들을 상대로 한 테러 피해 소송을 다시 심리하도록 결정했다.

이번 소송은 단순한 방조가 아닌, 기업이 테러 행위를 성공시키는 데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기여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영국 매체 더 가디언은 이번 사건이 여러 나라 기업의 제재 준수 책임과 테러 자금 조달 문제에 중대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