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유 수출 전격 중단…에너지 안보 대응
호르무즈 긴장 고조…글로벌 에너지 수송 차질
보험료 급등·항로 취소…사실상 ‘해협 봉쇄 효과’
중국 정유 연료 버퍼 약 10일…공급망 변수 부상
에너지 충격 넘어 제조업 위기…세계 경제 파장

중동에서 재점화된 군사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이 심각한 차질을 빚으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아시아 경제에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격화되면서 이란이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하자 보험료 급등과 항로 취소가 이어지며 해상 운송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가까워졌다는 분석이 해운업계에서 나온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중국 정부가 자국 최대 정유사인 시노펙과 페트로차이나 등에 디젤과 휘발유 수출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단순한 수출 조정이 아니라 정제유 제품의 해외 반출을 사실상 중단하라는 조치다.
비즈니스 타임즈는 중국의 최고 경제 정책 기관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최근 주요 정유사 경영진을 불러 회의를 진행한 뒤 정제유 제품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것을 구두로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은 새로운 수출 계약 체결을 중단하고 이미 합의된 선적 물량에 대해서도 취소 협상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다만 보세 저장시설에 보관된 항공유와 벙커유, 그리고 홍콩과 마카오로 향하는 공급 물량은 예외로 인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치의 대상에는 페트로차이나와 시노펙을 비롯해 중국해양석유총공사, 시노켐, 민간 정유사 저장석유화학 등 중국의 주요 정유기업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은 중국 정부로부터 정기적으로 정유제품 수출 할당을 받아온 업체들이다.
베이징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무역 조정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 대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페르시아만에서 군사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세계 최대 산유 지역 가운데 하나에서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세계 에너지 물류의 핵심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가 통과하는 글로벌 최대 에너지 수송로다.
2025년 기준으로 약 1,100억㎥ 규모의 LNG도 이 해협을 통해 이동했다.
이 항로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수출하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하루 약 550만 배럴을 수출하며 전체 수송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이어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이란이 뒤를 잇는다. LNG 시장에서는 카타르가 약 93%의 비중을 차지하며 대부분의 수출이 이 해협을 통해 아시아로 향한다.
전문가들은 해협이 완전히 봉쇄되지 않더라도 보험료 상승과 항로 취소만으로도 사실상 봉쇄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해상 운송이 지연되면서 일부 산유국은 생산 조정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카타르는 안전 문제와 선적 차질을 이유로 가스 액화 시설 가동을 전면 중단했으며, 석유수출국기구(OPEC) 주요 생산국인 이라크 역시 저장 용량 한계와 운송 위험 증가로 생산 축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정유 수출을 제한하며 자국 연료 공급 확보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정유 능력을 보유한 국가 중 하나지만 생산된 연료의 상당 부분이 국내 소비로 흡수되기 때문에 국제 시장에서 절대적인 공급국은 아니다. 해상 운송 기준으로 아시아 정유제품 수출 시장에서 중국은 한국과 싱가포르에 이어 세 번째 규모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는 중동 위기 속에서 자국 에너지 공급을 우선 확보하려는 전략적 조치로 해석된다.
베이징은 호르무즈 해협을 바라보고 자국의 연료 비축 상황을 점검한 뒤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 들어오는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이 걸프 지역에서 공급되며 전체 수입 원유의 약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들어온다. 액화천연가스 역시 약 30%가 같은 해상 통로를 거친다.
걸프 지역의 해상 운송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중국은 사태가 얼마나 장기화될지 확인하기 전에 확보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을 최대한 국내에 묶어 두려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을 둘러싼 군사 충돌이 더 이상 중동 지역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최대 제조국이자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인 중국이 연료 소비를 우선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 그 영향은 단순한 에너지 시장을 넘어 세계 산업 구조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반도체 부품에서 태양광 패널, 전자제품, 의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제조 제품의 글로벌 공급망 중심에 위치해 있다. 만약 이러한 산업 기반이 연료 확보를 이유로 생산 속도를 조정하게 된다면 그 충격은 페르시아만에 머무르지 않는다.
경제 분석가들은 공급망 충격이 실제 물류와 가격 지표에 반영되는 데 약 6주에서 8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본다. 이 경우 컨테이너 항구와 글로벌 물류 허브, 소매 유통망을 거쳐 소비자 물가지수까지 순차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에너지 시장에서는 하나의 수치가 중요한 변수로 거론된다. 일부 정유업계에서는 중국 정유사의 단기 운영 재고가 약 10일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만 상업 재고와 전략 비축유를 포함하면 실제 산업 충격이 나타나기까지는 수 주에서 수개월의 완충 기간이 존재한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이 기간을 넘어 지속된다면 두 달 이내에 중국 산업 전반에서 실제 공급 제약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중국 제조업의 생산 조정은 단순한 에너지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금융 시장은 원유 공급 충격 가능성을 일정 부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장기간 배럴당 60~65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다가 최근 80달러를 돌파했다. 유가 상승은 곧바로 연료 가격과 물류 비용을 끌어올리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이번 충격은 아시아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와 LNG의 80% 이상이 아시아로 향하며 중국·인도·일본·한국 등 주요 아시아 수입국이 전체 원유 물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가격 상승이 가장 빠른 영향이지만 해협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 제조업과 글로벌 공급망에도 파급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에너지 공급 충격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이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분석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영향력은 단순히 통과를 완전히 막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항로를 비싸고 위험하며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다며 이런 불확실성만으로도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무역 흐름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 운송 비용 증가, 공급망 지연이 겹치면서 세계 경제 성장률에도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또한 일부 시장 분석가들은 에너지 공급 충격보다 제조업 공급 충격이 훨씬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