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진핑과의 회담은 12점 만점”… 중국, 희토류 수출 재개·미국산 대두 대량 구매 합의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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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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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025-11-07 1:39

트럼프 10점 만점에 “12점짜리 회담” 자평하며 관세 인하 선언
시진핑 “협력의 이익 중시해야” 희토류 수출 재개
미국산 대두 대량 구매 합의로 농민 숨통 트여
AI·반도체 경쟁 등 근본 갈등은 여전
부산 회담으로 미중 무역 긴장 완화 기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한국 부산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직후 “만점이 10이라면 이번 회담은 12점짜리였다”며 성과를 자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협상에서 관세를 낮추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재개하며 미국산 대두(콩) 수입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길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올해 초 중국이 펜타닐 제조에 쓰이는 화학물질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부과했던 20%의 징벌적 관세를 10%로 인하하겠다”며 “이로써 전체 대중 관세율이 57%에서 47%로 낮아진다”고 말했다. 스콧 베센 미 재무장관은 “중국이 향후 3년간 매년 2천5백만 톤의 미국산 대두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며 “그중 1천2백만 톤은 내년 1월 이전에 구매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보복관세로 피해를 입은 미국 농민들이 다시 숨통을 틀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AP통신은 이번 합의가 “세계 양대 경제의 무역 불안을 완화한 단기적 조치”라고 분석했다. 특히 희토류 수출 완화와 미국산 대두 구매 재개는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기술·안보 경쟁의 구조적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APEC 불참으로 인해 “미국의 다자외교 리더십이 공백으로 비쳤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오는 4월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며, 시진핑 주석도 이후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며 “양국 간 첨단 반도체 수출 문제와 관련해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이 중국 당국과 직접 협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가까운 시일 내 무역 합의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더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평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트럼프가 먼저 눈을 깜빡였고, 이를 성공으로 포장했다”는 표현을 쓰며, 관세 인하와 수출 규제 유예는 ‘필수적인 후퇴’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이번 조치를 “145%까지 치솟았던 관세를 45% 수준으로 되돌린, 사실상 원점 회귀”로 규정했다.

“상호 보복의 악순환은 피해야” 시진핑, 협력 강조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회담에서 ‘양국 모두 장기적 관점에서 협력의 이익을 중시해야 하며, 상호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시 주석이 APEC 개막 연설에서 “세계가 불안할수록 협력이 필요하다”며 다자주의와 공급망 안정을 수호하겠다고 밝힌 점을 주목했다. 이는 미국의 ‘디커플링(공급망 분리)’ 정책에 대한 우회적 반박으로 해석된다. 그는 “중국 시장에 발을 딛는 자가 미래를 선점할 것”이라며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또한 중국 외교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시 주석은 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이 경제·무역, 에너지, 인적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할 의지를 확인했으며, 두 정상은 정례적 소통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아울러 중국 APEC 2026, 미국 G20 2026 등 향후 국제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상호 지원하며 글로벌 경제 성장과 거버넌스 개선을 도모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기존 단기적 무역 합의에 더해 양국 관계의 장기적 안정성과 협력 잠재력을 부각하는 부분이다.

두 정상은 100분간의 회담을 마쳤지만, 인공지능(AI)과 첨단산업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핵심 현안에서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후 고율 관세를 잇달아 부과하고, 중국이 이에 맞서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면서 이번 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추진됐다. 양국 모두 자국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극단적 충돌을 피하겠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화여대 리프 에릭 이슬리 교수는 “이번 합의는 최악의 시나리오, 즉 글로벌 교역 붕괴를 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APEC은 단순히 무역 휴전의 장이 아니라, 보호무역주의와 디지털 규범 경쟁이라는 더 큰 도전을 논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부산 군 기지 회의실에서 열린 ‘G2 회담’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오전, 부산국제공항 인근 군 기지 내 회의실에서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번 만남은 G2의 회담이 될 것”이라며 “세계 양대 경제대국이 함께 미래를 논의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썼다. 더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본회의를 건너뛴 점에 주목하며, “그의 퇴장은 시진핑에게 아시아 외교무대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셈”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회담 다음날 일본, 캐나다, 태국 등과의 양자회담을 이어가며 ‘책임 있는 협력자’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단기 안정, 구조적 경쟁은 여전”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를 ‘위기 완화를 위한 임시적 조치’로 평가하고 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크레이그 싱글턴 중국 담당 국장은 “이번 합의는 전략적 진전으로 포장된 단기 안정 조치에 가깝다”며 “양국은 위기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협력을 조율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경쟁 구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쏟아냈지만, 제네바와 런던 등지에서 이어졌던 이전 협상들이 진전과 후퇴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신중론도 나온다.

“중국,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이미지 부각 노려”

시진핑 주석은 회담 직후 부산에 머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상들과의 연쇄 회담 일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제이 트루스데일 전 미 국무부 관리이자 민간 정보회사 CEO는 “시 주석은 미국의 관세정책에 불만을 가진 주변국들에게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 대안적 파트너’로 인식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AP통신은 이러한 움직임이 “트럼프의 일방적 통상정책이 오히려 중국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시킨 결과”라고 평가했으며, 더 가디언은 “시진핑이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다”고 전했다.

한편 미 증시는 이번 회담 이후 양국이 무역 분쟁 완화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에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더 가디언은 “근본적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번 휴전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며, “미·중의 모순은 세계경제 전체의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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