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구리 가격, 산업 현장 흔드는 수급 불균형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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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31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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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마켓
2025-12-31 6:25

인공지능·에너지 전환이 끌어올린 구리 수요
데이터센터·전기차 확산, 구조적 수급 변화 가속
그라스버그 광산 사고로 드러난 공급 취약성
관세·비축 경쟁이 키운 가격 변동성
원자재 부담에 흔들리는 산업 현장과 중장기 과제

프리포트맥모란은 그라스버그 광산 사고로 향후 공급 전망에는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사진출처: 프리포트맥모란 공식계정

국제 구리 가격이 2025년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글로벌 산업계 전반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올해 런던금속거래소 기준 구리 가격은 톤당 1만20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연초 대비 상승률은 40%를 웃돌아 2009년 이후 가장 큰 연간 상승폭을 나타냈다. 최근에는 여러 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가격 변동성도 크게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기적인 투기 수요라기보다 구조적인 수급 변화와 산업 환경 전환, 정책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번 구리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인공지능 산업 확산에 따른 수요 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구리는 전력 전달과 열 관리에 필수적인 금속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구축에 핵심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인공지능 연산을 수행하는 초대형 데이터센터는 기존 시설보다 훨씬 많은 구리를 필요로 하며, 시설 하나당 상당한 규모의 구리가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엔비디아, 오라클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인공지능 연산을 위한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면서 전력 설비와 냉각 시스템에 사용되는 구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리 수요는 일시적인 정보기술 투자 확대를 넘어, 인공지능 산업 성장과 맞물린 구조적 증가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 보급 확대와 에너지 전환 흐름까지 더해지며 수요 압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기차 한 대에 사용되는 구리 양은 내연기관 차량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며, 송배전망 확충과 에너지 저장 시스템 구축 역시 대규모 구리 소비를 전제로 한다. 이로 인해 구리는 단순한 산업 원자재를 넘어 미래 산업과 에너지 전환의 핵심 기반 자원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국제 구리 가격은 구조적 수요 증가와 공급 차질, 정책 변수까지 겹치며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단기 조정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고가 흐름이 유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출처 : 블룸버그·로이터 통신 종합, 런던금속거래소(LME), 주요 투자은행 자료 / 그래픽: 유스풀피디아


반면 공급 여건은 이러한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주요 구리 생산국인 인도네시아, 칠레,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는 생산 차질과 가동 불안이 이어지고 있으며, 실제 대형 광산 사고가 공급 불안을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계 광산업체 프리포트맥모란은 올해 9월 인도네시아 파푸아 지역 그라스버그 광산에서 발생한 지하 채굴 사고로 불가항력 상태를 공식 선언했다. 습윤 물질이 지하 갱도를 막으면서 작업자들이 고립되는 중대 사고가 발생했고, 구조 작업을 위해 광산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프리포트 측은 그라스버그 광산의 정상 가동이 2026년 상반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법인의 구리 생산량은 최대 3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여파로 런던금속거래소 구리 가격은 단기간에 3% 이상 급등하며 15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고가 단순한 일회성 차질을 넘어 글로벌 구리 공급 전망 전반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공급 차질은 금융권의 중장기 전망에 이미 반영됐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그라스버그 광산 사태 이후 구리 공급 전망을 잇달아 낮췄고, 골드만삭스는 2025~2026년 글로벌 구리 공급이 약 52만 톤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2025년 구리 시장은 연초 예상과 달리 공급 과잉이 아닌 공급 부족 국면으로 정리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무역 정책과 관세 변수까지 더해지며 가격 상승 압력은 더욱 커졌다. 미국 정부가 구리 및 구리 관련 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예고하자, 미국 내 수요자들은 관세 시행 이전에 구리를 선제적으로 비축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시장에 풀릴 물량이 줄어들었고, 지역 간 가격 차이가 확대되면서 차익 거래가 활발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정책 불확실성 자체가 구리 가격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리 가격 상승의 여파는 전선·케이블, 전력기기, 전자부품 소재 등 하위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구리를 핵심 원자재로 사용하는 전자·전기 소재 산업에서는 원가 부담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인쇄회로기판(PCB)과 동박적층판(CCL) 등 전자부품 소재 분야는 구리 의존도가 높은 대표적인 영역으로, 최근 구리 가격 급등에 따른 동박 가격 상승이 수익성 악화와 가격 전가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부담이 누적될 경우 전자부품을 넘어 완제품 제조 단계로까지 영향이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구리 가격 상승이 단기적인 비용 부담을 넘어 중장기적인 사업 전략과 투자 계획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원자재 조달 안정성과 가격 변동성 관리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전망을 두고는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과 함께, 중장기적으로는 높은 가격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공존한다. 인공지능, 전기차, 에너지 전환이라는 구조적 수요 요인이 여전히 견고한 데다 공급 확대가 제한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수급 불균형이 이어질 경우 구리 가격이 추가 상승 여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는 연말 거래에서 국제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향해 급등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 여건이 이전보다 훨씬 타이트해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관세 리스크에 대비한 수입 선매와 재고 확보 움직임이 확대되면서 실제 가용 물량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이러한 공급 압박이 구리 가격 랠리를 강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중국 경기 둔화 국면에도 불구하고 구리 가격이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인공지능·에너지 전환 수요와 함께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광산 사고 등 주요 생산 차질이 글로벌 구리 시장의 수급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구리 가격 상승이 과거의 일시적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장기 산업 변화 속에서 형성된, 구조적으로 다른 수급 흐름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