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 시대에도 금이 여전히 가치를 지니는 이유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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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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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풀인사이트
2025-12-23 12:01

금, 5천년 넘게 인간 역사 속 안정적 가치로 자리매김
디지털 자산 시대에도 금은 신뢰와 희소성으로 투자 피난처 역할
중앙은행, 금 보유 확대… 달러 의존도 감소와 지정학적 안전 확보
금은 인플레이션 헤지뿐 아니라 경제 불확실성 보험으로 기능
문화·심리적 상징성 유지… 인도, 중국 등에서 전통적 수요 강세

/ 사진 출처: 유스풀피디아

인류는 5천 년 넘게 금에 매료돼 왔다. 신전을 장식하고 황제의 왕관을 장식했으며, 통화 시스템의 기반으로 활용되었다. 금은 단순한 화폐나 장식품을 넘어 인간의 영속적 가치를 상징하는 메타포이기도 했다. 암호화폐, 인공지능,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등장한 오늘날에도 금의 가치는 여전히 굳건하다. 그렇다면 왜 금은 여전히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는가.

역사적 가치와 경제적 속성

금의 가치는 현대 금융 이전부터 존재했다. 기원전 7세기 리디아인은 금화를 주조하며 무역의 기준을 마련했고, 고대 이집트와 로마에서는 금을 신성한 금속으로 여겼다. 금은 내구성과 희소성, 분할 가능성 등으로 화폐로서 이상적이었다. 녹슬지 않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으며, 제한된 양만 존재하기 때문에 교환 수단으로 완벽했다.

19세기 금본위제는 세계 금융 질서의 기초가 되었다. 당시 영국 파운드는 영란은행이 보유한 금과 직접 교환 가능했고, 과도한 통화 발행을 억제하며 안정적 환율을 보장했다. 그러나 경제적 유연성을 제한해 대공황 시기에는 경기 침체를 심화시키기도 했다.

브레튼우즈 체제(1944년)에서는 달러를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하고, 다른 통화를 달러에 연동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재정적자와 전쟁 비용으로 인해 체제가 지속 불가능해지면서 1971년 금 환매가 중단됐다. 통화는 이제 금이 아닌 신뢰에 기반한 명목화폐로 전환되었지만, 금의 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만 바뀐 것이다.


투자 피난처로서 금

금은 화폐적 기준에서 투자 피난처로 변모했다. 1970년대 오일 쇼크와 인플레이션,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등 경제 불확실성 시기에 금 가격은 급등했다. 2023~2024년 금리 인상기에도 중앙은행들의 금 수요는 꾸준히 유지됐다. 중국, 인도, 터키, 폴란드 등은 미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금 보유량을 1,100톤 이상 확대했다. 금은 국가에 속하지 않고 상대방 위험이 없는 투자 수단으로, 정치적·경제적 헤지 수단으로서 가치를 발휘한다.

최근 금값은 온스당 4,000달러를 넘어섰고, 2025년 한 해 40% 상승하며 1979년 이후 최대 연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 상장 금 ETF 보유량은 200억 달러에 육박하며 40% 이상 증가했다.

그래프의 구간 A는 1973~1974년 첫 번째 오일 쇼크, B는 1980년 인플레이션 정점, C는 2011~2012년 유럽 재정위기, D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금 가격이 상승한 시기를 각각 보여준다 / 이 그래프는 금 가격과 글로벌 경제 변동, 주요 역사적 사건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작성됐다. 금 가격 자체는 세계금협의회의 통계를 활용했고, 인플레이션과 거시경제 지표는 IMF와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를 참고했다. 또한 달러 기준 경제 데이터와 장기 추세 분석에는 연방준비제도와 세계은행 자료를 결합해, 신뢰할 수 있는 다기관 데이터를 기반으로 금의 역사적 흐름과 경제적 의미를 시각화했다.


금의 경제적 속성

금의 가치는 희소성, 내구성, 신뢰에 기반한다. 연간 금 채굴량은 전체 지상 보유량의 1.5%에 불과하며, 기존 210,000톤의 금은 여전히 금괴, 동전, 장신구 등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금 가치는 단순 지질학적 희소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금은 사회적 합의, 즉 인간이 신뢰하는 금속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경제학자 로버트 먼델은 금의 지속적 가치를 “쓸모없음에 대한 신뢰”라고 표현했다.

금은 단순히 인플레이션 헤지에 그치지 않는다. 금값 상승은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 약화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실질 금리가 음수일 때 금의 상대적 매력은 더욱 커진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2010년대 경제 불확실성 시기, 금은 안정적 보험 역할을 수행했다.

심리적·문화적 의미

투자자에게 금은 안정성을 제공하는 심리적 장치다. 포트폴리오의 5~10%를 금에 할당하는 것이 권장되며, ETF, 국채형 금, 디지털 금 계좌 등을 통해 신흥국 투자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금은 여전히 강력하다. 인도 가계는 약 25,000톤 이상의 금을 보유하며, 축제와 혼례에 금 구매가 절정에 달한다. 중국에서는 금이 미덕과 행운, 안정성을 상징하며, 금융 불안 시 소매 투자자가 금 장신구를 찾는다.

디지털 자산과 비교

비트코인 등 디지털 자산은 금과 유사한 희소성을 갖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변동성과 무형성, 디지털 인프라 의존성 때문에 금과 완전히 비교할 수 없다. 금은 물리적 실체를 지니며, 코드 오류나 규제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비트코인이 미래적 신념이라면, 금은 집단적 신뢰의 역사적 기억이다.

지정학적 안전자산

21세기 금은 전략적 자산으로 재부상했다. 서방 제재와 달러 체제 무력화 속에서 중국, 러시아 등은 금을 지정학적 완충재로 활용한다. 중국 인민은행은 2,300톤 이상, 인도 중앙은행은 800톤 이상을 보유하며 국가 안보 수단으로 삼는다.

철학적 의미

금은 ‘가치’의 본질을 탐구하게 한다. 금은 노동, 효용, 인식 등 다양한 가치 평가 기준과 결합하며, 제한적 효용과 막대한 심리적 가치를 동시에 충족한다. 토큰화와 AI 거래 플랫폼 등 금융 혁신으로 금의 거래 방식은 변할 수 있지만, 금 자체의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디지털 자산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도, 금은 물리적 실체와 신뢰의 상징으로서 여전히 변치 않는 가치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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