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도 금값 하락…안전자산 공식 깨졌나
RSI 36·중립 신호…추세 없는 약세 구간 진입
금리 동결과 달러 강세, 금 시장 압박 지속
호르무즈 리스크 속 에너지 충격과 인플레이션 확산
금 채굴주 급락…수익성 악화로 이중고 직면

중동에서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의 전쟁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금 가격이 급락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해외 금융 정보와 블룸버그 보도 등에 따르면, 금 가격은 2026년 1월 고점인 약 5,395달러에서 3월 중순 약 4,400달러 수준까지 하락하며 약 18% 가까이 떨어졌다. 금 채굴 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3월 한 달 동안 28% 급락했으며, 구성 종목의 95%가 약세장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적 지표는 전반적으로 중립에 가까운 약세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상대강도지수(RSI)는 36.223 수준으로 과매도 구간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하락 압력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판단은 이동평균과 오실레이터 등 총 26개의 기술적 지표를 종합해 산출되는 기술적 종합평가(Technical Ratings)를 기반으로 하며, 여러 시간대에 걸친 신호를 함께 반영해 시장을 매수(Buy), 매도(Sell), 중립(Neutral) 등으로 요약하는 특징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오실레이터 지표는 중립 영역에 머물러 있으며, 단기 모멘텀은 하락 흐름 속에서도 점차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MACD는 여전히 음의 영역에 위치해 하락 추세가 유지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가운데, 추세 강도를 나타내는 ADX는 30 수준으로 시장에 추세 자체는 존재하지만 방향성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종합적으로 시장은 과매도 구간은 아니지만 반등 여부를 탐색하는 중립적 구간에 위치해 있으며, 점수 기반 종합 평가에서도 약세 쪽으로 기울어진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는 금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왔지만, 이번에는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중동 지역의 에너지 충격이 자리하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5달러를 넘어섰고,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3월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5~3.75% 수준으로 유지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연내 금리 인하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밝히며, 에너지 비용 상승이 지속될 경우 추가 긴축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 같은 통화정책 기조는 달러 강세로 이어졌다. 달러는 2026년 들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부상했으며, 국제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달러 기준 금 가격 부담이 커지며 매수 여력이 위축된 상황이다. 동시에 주식시장 약세로 마진콜 압박을 받은 헤지펀드들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금 보유 물량을 매도하면서 하락 압력이 추가로 확대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인플레이션이 금리 동결 기조를 강화하며, 금리 환경이 다시 달러 강세를 유도해 금 가격을 끌어내리는 구조가 형성됐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금의 역설’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주요 분쟁에서는 금 가격이 상승하는 흐름이 일반적이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3년 이라크 전쟁, 2010년 유럽 재정위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부각됐다. 특히 2023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역시 현재까지도 공식적인 종전 없이 이어지며 지정학적 긴장을 지속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쟁 상황에서도 금 대신 달러가 선택되면서 기존 패턴이 깨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 채굴 기업들은 이중 압박에 직면했다. 금 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이 감소한 가운데, 유가 상승으로 디젤 등 에너지 비용이 크게 증가하며 운영 부담도 확대됐다. 이에 따라 수익성은 2023년 저점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압박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도 유사한 극단적 상황은 존재했다. 2023년 10월에는 금 채굴 기업의 90%가 약세장에 진입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후 관련 지표는 반등 국면에서 2026년 1월 29일까지 약 177% 급등하는 강한 회복세를 보인 바 있다. 다만 당시에는 금리 인하 기대가 존재했지만, 현재는 금리 동결 기조가 유지되고 있어 거시 환경은 다소 상이하다는 평가다.
이 같은 수익성 압박은 금 채굴 산업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가상자산 채굴 업계 역시 에너지 비용 상승과 자산 가격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며 수익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채굴 수익성 악화로 보유 물량을 매도하기도 했다. 다만 가상자산 채굴 기업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으로 사업 전환이 가능한 반면, 금 채굴 기업은 구조적으로 사업 다각화에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로 전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면서 에너지 가격이 안정될 경우 금리 인하 기대가 되살아나 금 가격 반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금은 안전자산이라는 명목과 달러 강세라는 현실 사이에서 제한적인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