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도 하락한 금값…안전자산 공식 흔들리다
인플레이션·금리·달러…금값 급락 이끈 3대 변수
고점 대비 18% 하락…금 시장, 단기 충격 국면 진입
‘종이 금’은 매도, 실물 금은 매수…엇갈린 수급 흐름
중앙은행은 사들인다…금의 장기 가치 여전히 유효
국제 금값이 최근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강세를 보여온 금이 오히려 약세를 보이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 가격은 지난 1월 29일 온스당 약 5,395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하락세로 전환됐다. 이후 3월 초까지 5,300달러 선에서 등락을 반복했으나, 3월 중순 이후 낙폭이 확대되며 4,40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현재 금값은 약 4,407달러 수준으로, 고점 대비 약 18% 하락한 상태다.
주간 기준으로 금값은 약 9~10% 하락하며 2011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은 가격은 3월 10일 고점 대비 약 22% 급락하며 금보다 높은 변동성을 보였고, 하락 폭 역시 더 크게 확대됐다.
이번 금값 급락은 전쟁 자체보다는, 전쟁이 촉발한 거시경제 변화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웃돌자 시장에서는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빠르게 확산됐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긴축 기조를 유지했고, 향후 금리 인하 기대 역시 축소되면서 시장 전반의 기대 수준을 낮췄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금융시장에 빠르게 반영됐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2%까지 상승했고, 달러화 역시 강세를 보이며 달러 인덱스는 100선에 근접했다.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자산인 만큼, 실질 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 국면에서는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 전쟁은 ‘안전자산 선호’를 금이 아닌 달러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이는 긴축 장기화를 유도하며, 결국 달러 강세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금 가격이 압박을 받은 것이다.
다만 이러한 흐름은 선물·ETF 중심의 이른바 ‘종이 금’ 시장에서 두드러진 현상으로, 실물 시장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도와 아시아 지역에서는 실물 금 거래 시 현물 가격 대비 5~10% 수준의 프리미엄이 형성되고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의 저가 매수세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보석업체와 기관 투자자 역시 매수 기조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특히 중국의 행보가 눈에 띈다. 중국 인민은행은 16개월 연속 금 보유량을 확대하며, 2월 기준 약 7,400만 온스 수준까지 보유량을 늘렸다. 금이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10% 내외로, 불과 20개월 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일부 시장에서는 중국의 실제 금 매입 규모가 공식 발표보다 클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입 및 생산 데이터 간 괴리를 근거로 실제 매입량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2025년 한 해 동안 1,000톤이 넘는 금을 매입하며 3년 연속 대규모 순매수를 이어갔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금값 상승 국면에서 유입됐던 단기 투자자들이 이번 하락장에서 빠르게 이탈한 반면, 중앙은행과 같은 장기 투자 주체들은 여전히 매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장기 전망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일부 기관들은 2026년 금 가격이 6,000~6,300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정학적 긴장이 심화될 경우 7,0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값 급락을 구조적 변화라기보다 ‘단기적 유동성 충격’으로 해석한다. 레버리지 투자자들의 마진콜, 모멘텀 펀드의 포지션 청산, 단기 자금 이탈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이번 상황은 역설적이다. 전쟁은 단기적으로 금 가격을 압박했지만, 동시에 금의 장기 투자 논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탈달러화 흐름, 각국의 재정적자 확대,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금 매입, 제재 리스크 등 구조적 요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기적으로는 달러 강세와 금리 상승이 금값을 압박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꾸준히 금을 축적하고 있다. 시장 변동성 속에서 금의 ‘가격’과 ‘가치’ 간 괴리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흐름에 대한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