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조기수령 100만 명 돌파…“생활비 급해 손해 알아도 미리 받는다”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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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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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슈
2025-11-07 23:21

조기수급자 5년 새 1.5배↑…76%는 월 100만 원 미만
조기수령 100만 명 시대 노후 불안의 그림자
생활비 막막해 ‘손해 연금’ 선택하는 국민들
고액 수급자도 앞당겨 받는 새로운 흐름
연금 신뢰 추락…제도 개선 시급
형편 따라 갈라지는 연금 양극화
일시불 수령은 제한적 ‘반환일시금’ 형태로만 가능
국민연금 주식투자 수익 200조 원…운용 안정성 논란도 병존

국민연금을 조기수령하는 이들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조기퇴직과 생활비 부족으로 ‘손해’임을 알면서도 노후자금을 미리 꺼내 쓰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기수급 확산이 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조기 노령연금 수급자는 100만2,786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67만3,842명에서 불과 5년 만에 약 1.5배 증가한 수치다. 반면 수급 시기를 늦춰 더 많은 연금을 받는 연기 노령연금 수급자는 같은 기간 5만8,908명에서 15만2,171명으로 2.6배 늘었다. 전체 연금수급자(약 621만 명) 가운데 5명 중 1명은 형편에 따라 수급 시기를 조정하고 있는 셈이다.

1년 앞당기면 6%씩 감액…‘손해 연금’ 감수

국민연금은 만 65세(출생연도별 상이)부터 받을 수 있지만, 최대 5년 앞당겨 받을 수 있다. 문제는 1년 조기 수령 시 약 6%씩 수급액이 줄어드는 구조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64세에 월 11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4년 일찍 받으면 30%가량이 깎여 월 80만 원대만 수령하게 된다. 이 때문에 조기수령자는 ‘손해 연금’이라는 표현을 쓴다. 감액된 금액을 평생 적용받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연금 총액이 크게 줄어든다. 실제로 조기 수급자의 76%는 월 100만 원 미만의 연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기수령이 늘어나는 이유는 현실적인 생계 문제 때문이다. 예정보다 일찍 퇴직한 60세 정모 씨는 “손해라는 걸 알지만 생활비가 없어 어쩔 수 없다”며 “일찍 받아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액 수급자도 조기수령…“건강할 때 쓰는 게 낫다”

최근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고액 수급자들 사이에서도 조기수령이 늘고 있다. 월 150만~200만 원 수급자 중 조기수급 비율은 2020년 11.7%에서 올해 26.5%로 급등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기준이 강화(연소득 3400만 원 → 2000만 원 이하)되면서, 수급액을 조정하거나 조기 수령으로 소득 기준을 맞추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소득층은 수급을 미루는 추세다. 국민연금은 1년 늦출 때마다 수급액이 7.2%씩 늘어나, 최대 5년까지 연기하면 36%를 더 받을 수 있다. 서울 강남구의 연기연금 수급자 비율은 9.7%로 전국 평균(2.5%)의 4배에 달했다.

“연금 신뢰 낮아져”…제도 개선 필요성 커져

전문가들은 조기수령 확산이 국민연금의 본래 취지인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조기수급으로 인해 실질 월 수급액이 35%가량 감소한다”며 “장수시대에선 노후대비 기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공단 역시 2022년 보고서에서 “조기 노령연금 최소 가입 기간을 현재 10년에서 15년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또한 최근 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5.7%로 “신뢰한다”(44.3%)보다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소득 공백을 메우는 수단으로만 인식되면서 국민연금이 자산처럼 취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공단페이스북


‘일시불 수령’은 가능할까?

일부 국민들은 “한꺼번에 일시불로 받을 수 없느냐”고 묻지만, 일반적인 일시불 수령은 불가능하다. 다만 연금수급 요건(10년 이상 가입)을 채우지 못했거나 국외이주·사망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반환일시금’ 형태로 납부보험료와 이자를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연금 수급요건을 충족한 뒤에는 일시금으로 받을 수 없다”며 “반환일시금은 예외적 제도로, 일종의 납부금 환급 성격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형편 따라 갈린 연금 수급…국민연금공단은 주식 투자 확대 중

전문가들은 조기와 연기 연금 모두 제도상 합법적 선택이지만, 경제적 형편에 따라 수급 전략이 갈리면서 ‘연금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장은 “평균 수명이 길어진 만큼 연금으로 30년 이상 살아가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며 “조기수급 확대는 노후 불평등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 방향도 주목된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2025년 말 기준 목표 포트폴리오에 따르면 전체 운용자산 약 1,322조 원 가운데 국내주식 비중은 14.9%, 해외주식 35.9%, 국내채권 26.5%, 해외채권 8.0%, 대체투자 14.7%로 설정돼 있다.

이를 금액 기준으로 환산하면 국내주식 약 197조 원, 해외주식 475조 원, 국내채권 350조 원, 해외채권 106조 원, 대체투자 194조 원 규모다. 국민연금은 이 중 해외주식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2026년 말 38.9%까지 늘릴 계획이며, 글로벌 분산투자를 통해 안정성과 수익성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국내외 주식시장의 강세에 힘입어 약 200조 원 규모의 운용수익을 거두면서 기금 고갈 시점을 약 32년 늦춘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성과는 국내 대형주 중심의 안정적 투자전략과 해외 주식 분산투자 확대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 비중은 공식 공시 기준으로 2025년 8월 말 현재 전체 운용자산의 14.8%(약 196조 원)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목표치인 14.9%에 근접한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 주식시장 강세와 추가 매입 영향으로 실질 운용 비중이 약 17%를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전체 운용자산 중 약 60% 이상을 주식(국내·해외 포함)에 투자하고 있는 만큼, 시장 변동성에 따른 수익률 민감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다만, 대체투자 비중 또한 목표치(14.7%)를 상회하는 약 17% 수준까지 확대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수익성 추구가 과도해질 경우 중장기적인 기금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확대가 단기 수익률 개선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세계 증시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는 위험 분산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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