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3,500억 달러 협상, ‘복합 조달 구조’로 막판 조율
‘캐피털 콜’ 도입 검토…단계별 출자 통한 재정 부담 완화
ESF·신디케이트론·FIMA 레포…달러 조달의 삼중트랙 가동
일본, 5,500억 달러 투자 속 실질투자 1~2%…관세 감면 실익 극대화
韓·日 협상, 숫자보다 ‘구조의 설계’가 성패 가른다
한·미 간 대규모 투자 협상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면서,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과 달러 유동성 확보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복합 조달 구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단은 1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관리예산국을 방문해 대미 투자펀드 협약의 문구 조율과 자금 조달 방안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협상은 미국이 요청한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직접적인 달러 매입이 국내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 다양한 ‘비시장성 조달 메커니즘’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첫째, 미국 재무부 외환안정기금(ESF)과의 통화스와프를 활용해 투자에 필요한 원화를 달러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둘째, 글로벌 신디케이티드론을 통해, 한국 정부가 지분을 투자한 특수목적펀드(SPV)가 한·미 정부 보증을 기반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 선·중순위 대출을 조달하는 구조를 검토 중이다.
셋째, 이미 체결된 FIMA 레포(Repo) 제도를 활용해, 한국은행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담보로 연준(Fed)에서 최대 600억 달러 규모의 단기 달러를 조달하는 방안이다.
또한 정부는 전체 투자액을 한 번에 납입하지 않고, 프로젝트 진행 시점에 따라 단계적으로 출자하는 ‘캐피털 콜’ 방식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이 방식은 약정된 투자 한도 내에서 필요할 때마다 출자 요구가 이루어지는 분할 지급 구조로, 초기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미 재무부 외환안정기금(ESF)과의 통화스와프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식은 미국 재무부 산하 외환안정기금(ESF)을 활용한 통화스와프다. 이 방안은 한국은행이 보유한 원화 자금을 담보로 미국 재무부의 달러를 교환받는 구조로, 시장 내 환율 변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미국이 아르헨티나와 체결한 200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 사례가 전례로 거론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준(Fed)을 통한 직접 스와프 체결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다면, 재무부 ESF를 통한 협정이 보다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신디케이트론 통한 민간 조달
정부는 또 다른 축으로 ‘신디케이트론’을 고려 중이다.
이는 정부 또는 국책은행이 특수목적펀드(SPV)를 설립해 일정 지분을 투자하고, 여기에 국제 투자은행(IB)이 선·중순위 대출을 제공하는 형태다. 미국 정부의 지급보증이 병행될 경우 조달 금리를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 결국, 정부 보증 + 민간 자금 + 국제대출이 결합된 구조로 이해된다.
또한, 캐피털 콜 구조를 병행하면 신디케이트론과의 조합을 통해 투자 집행 시기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어, 대규모 프로젝트의 재정 리스크를 분산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FIMA 레포 활용 가능성
이와 함께, 한국은행이 이미 체결해둔 한미 FIMA 레포(Repo) 기구 활용 방안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 제도는 한은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담보로 연준에 맡기고 달러를 단기 조달하는 방식으로,한도가 600억 달러에 달한다. 다만 이 제도는 주로 글로벌 금융위기 등 긴급상황에서 활용된다는 점에서 “정상시 사용은 신중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복합 구조가 유력…“달러 조달의 삼중트랙”
결국 정부는 ▲ESF 통화스와프 ▲신디케이트론 ▲FIMA 레포 ▲캐피털 콜 구조를 혼합한 ‘3단계+α 복합 조달 트랙’으로 방향을 잡는 분위기다.
이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을 직접 소진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이 요구한 투자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절충형 모델”로 평가된다.
미 재무부 스콧 베센트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내가 연준 의장이라면 한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을 것”이라고 언급해, 양국 간 협의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해석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출국길에서 “미국과의 협상이 긍정적인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협상의 본질은 ‘달러 공급 루트’
이번 논의의 핵심은 자금 규모가 아니라 달러를 어떤 경로로 조달하고, 그 대가로 어떤 경제적 보상을 얻을 것인가에 있다. 정부가 제안한 복합 조달안이 외환시장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미국 측의 투자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지가 협상 타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일본, 5,500억 달러 대미투자 ‘수익 9:1 구조’…직접투자는 고작 1~2%
일본이 지난 7월 미국과 체결한 관세·투자 협정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겉으로는 ‘5,500억 달러(약 780조 원) 대규모 투자’로 보이지만 실질적인 직접투자 비율은 1~2%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대부분은 대출 및 보증 형태로 구성돼 있다.
리요세이 아카자와 일본 경제상 겸 통상교섭대표는 NHK 인터뷰에서 “5,500억 달러 전액이 현금으로 미국에 이전되는 것은 아니다”며 “실제 자본 출자는 약 1~2% 수준이고, 나머지는 융자 또는 보증 방식으로 운용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직접투자금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한·미 양국이 50대50으로 수익을 나누고, 이후 일정 시점부터는 미국 90%, 일본 10%의 수익 배분 구조가 적용된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명목상 5,500억 달러를 약속했지만, 실제 수익이 공유되는 투자액은 55억~110억 달러(약 8조~16조 원)에 불과한 셈이다.
일본, 관세 인하 효과로 실익 확보
로이터통신과 일본타임즈는 일본이 이번 협상을 통해 약 10조 엔(약 680억 달러, 원화 약 96조 원) 규모의 자동차 등 주요 품목의 관세 인하 혜택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즉, 전체 투자금의 대부분이 미국 측으로 귀속되는 대신, 일본은 실질적인 재정 손실 없이 관세 감면이라는 실물경제 효과를 얻는 구조다.
미국의 행정명령에는 천연자원, 일반의약품, 화학소재 등 공급 부족 품목의 관세를 최대 0%까지 낮출 수 있는 재량 조항이 포함됐다.
또한 이번 협정은 별도의 조약 문서 없이, 백악관이 발표한 ‘팩트 시트’ 형식으로 공개돼 일본의 ‘실행 우선’ 실용주의 접근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한편, 유럽연합(EU) 역시 미국과의 협상에서 투자 약속과 관세 조정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프레임워크’를 체결했다. 다만 일본·한국이 복합 금융조달 방식을 설계한 것과 달리, EU는 무역·관세 구조 개편에 협상의 무게중심을 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美가 90% 수익 가져가도 “실질 손해는 미미”
아카자와 장관은 “미국이 90%의 수익을 가져간다 해도 일본의 손실은 수십억 엔 수준에 불과하다”며 “일본이 미국에 팔려갔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는 전체 자금의 대부분이 융자·보증 형태로 회수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JBIC(국제협력은행)과 NEXI(무역보험공사) 등 정부계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의 약 70% 이상을 공급할 계획이며, 이들 기관이 실질적인 조달 창구 역할을 맡는다.
공동성명: 농산물·에너지 수입 확대
9월 4일 발표된 한·미 공동성명에서는 일본의 대미 시장 개방 및 상품 구매 약속이 구체화됐다.
미국산 농산물: 연간 80억 달러 구매 (기존 총액에서 확대)
미국산 에너지: 연간 70억 달러 규모 수입
청정에너지차 보조금: 미국산 전기차 구매 장려
방위장비: 기존 방위력 강화 프로그램 내 미국산 무기 및 반도체 포함
또한 일본은 국내 쌀 시장 보호를 위해 미국산 쌀 수입을 최소수입량(MMA)의 75%까지 확대하는 절충안을 수용했다.
미국은 향후 의약품·반도체 등 232조 관세 적용 시 일본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韓·日의 대미 협상, ‘구조의 차이’가 본질
결국 일본은 명목상 5,500억 달러, 실질 현금투입 1~2%, 수익 배분 9:1의 고정 손익 모델을 통해 관세 감면과 정치적 실익을 동시에 챙겼다. 반면 한국은 현재 논의 중인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펀드의 구체적 구조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일본처럼 소규모 직접투자 + 대규모 융자·보증 + 단계적 출자(‘캐피털 콜’ 방식) 조합으로 협상이 마무리될 경우,미국 측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국내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절충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과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의 사례는 투자 규모보다 구조 설계의 정교함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한국도 단순한 명목상 투자액보다 자금 흐름의 구조와 출자·수익 배분 방식을 전략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남은 과제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과의 협상에서 ‘투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자본 투입이 아닌 금융적 조정 협정의 성격이 더 강하다. 핵심은 “얼마를 투자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유리한 구조로 협상하느냐”에 있다.
요약하면, 일본은 1~2%의 직접투자만으로 5,500억 달러 규모의 협정 효과를 확보했으며,
한국 측은 3,500억 달러 규모의 약속을 외환시장 충격 없이 이행하기 위한 복합적 조달 구조를 모색 중이다.
일본과 달리 실질 투자 비율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미국 측 요구 조건, 외환시장 안정, 재정 부담 등 다양한 제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협상은 다소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
결국 두 나라의 접근법은 다르지만, 협상의 본질은 ‘달러를 어떤 방식으로 조달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키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