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원인과 보이지 않는 원인, 무엇이 환율을 움직였나”
“국민연금·기업·개인의 동시 매수, 달러 수요가 폭발한 구조”
“금리·통화·재정… 고환율의 배후에 있는 진짜 체력 저하”
“해외투자 과세 논란, 해답이 아닌 혼란만 키운다”
“환율은 경제의 체온계… 체온 붕괴는 근본 원인에서 시작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나들면서 고환율의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일부 관계자들은 해외주식 투자 증가를 고환율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하며, 서학개미에 대한 추가 과세 가능성까지 언급했지만 시장의 반발이 거세다. 그러나 현재의 고환율은 단순히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매수로 설명하기에는 규모와 영향력이 훨씬 더 크며,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외환시장의 움직임이 개인 매매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상황은 ‘보이는 원인’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의 체력을 약화시키는 근본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은행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올해(2025년) 1~3분기 동안 달러 수요가 급증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 개인, 기업이라는 세 주체가 동시에 대규모 달러 매수에 나섰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매수는 245억 달러로 전년 대비 92%나 증가했고, 개인 투자자 즉, 서학개미 역시 166억 달러를 순매수하며 74%의 증가율을 보였다. 수출기업들의 해외 달러 보유도 537억 달러로 21% 늘어나면서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잔액은 5140억 달러, 기업의 해외직접투자(FDI)는 9067억 달러에 달해 이미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대 행위자로 자리 잡았다. 특히 글로벌 교역 환경 악화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재협상 가능성까지 맞물리며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6000억 달러 규모의 방어적 달러 확보에 나선 점도 자금 수요를 끌어올렸다.
이처럼 달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서학개미 역시 일부 역할을 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비중은 전체의 일부일 뿐이며, 근본적으로 환율을 밀어 올린 핵심 요인은 따로 있다. 그 핵심에는 한·미 금리차, 통화량 축소, 재정 건전성 악화 등 경제 시스템의 뼈대를 흔드는 요소들이 놓여 있다.
먼저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는 한국 2.5%, 미국 4% 수준으로 크게 벌어진 상태다. 금리차가 확대되면 자금은 자연스럽게 높은 금리를 찾아 이동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원화는 약세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시장의 예상과 이론이 모두 일치하는 전형적인 자본 흐름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 통화량이 8~9% 정도 감소한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통화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시장에서 돈이 말라가고 있음을 의미하며, 유동성이 부족해질수록 소비와 투자는 위축되고, 위험자산보다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런 환경에서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환율도 상승하게 된다.
여기에 재정 상황까지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728조 원 규모의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확대로 인해 정부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단기 부양을 위한 소비쿠폰이나 각종 재정 지출 정책이 반복될수록 원화에 대한 신뢰도는 약해지고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결국 근본적인 재정 구조 개선 없이 서학개미나 특정 행위자를 탓하는 방식은 문제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율의 변화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기초 체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IMF는 한국의 2024년 GDP를 1조 8,754억 달러로, 2025년은 1조 8,586억 달러로 추산하며 –0.9%의 역성장을 예측했다. 환율이 높아질수록 달러 기준 GDP는 더 작아지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실제보다 축소돼 보이는 효과까지 발생한다. 이는 국가 신용도와 자본 유입, 기업 가치에도 부정적인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결국 환율은 국가의 체온과 같고, 지금은 그 체온이 정상이 아니라는 신호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주식 투자에 대한 과세 강화 같은 조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시장 신뢰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해외 투자를 억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국내 주식의 장기 보유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거나, 성장·모험자본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산업 정책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인 접근일 것이다. 국내 시장을 ‘벌’을 통해 유도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며, 오히려 국내 시장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자금이 자연스럽게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결국 지금의 고환율은 서학개미를 포함한 특정 주체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금리 차, 통화량 위축, 재정 악화, 성장 둔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환율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보이는 원인만을 때리는 대증요법은 근본적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초 체력을 회복하는 구조적 처방이며, 환율이 보내는 경고 신호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