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안전’을 약속했지만, 정유업계는 아직 베네수엘라를 믿지 못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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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11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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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마켓
2026-01-11 7:50

“완전한 안전” 약속했지만…정유업계는 ‘아직 투자 불가’ 판단
1천억 달러 투자 압박에도 기업들은 조건부 신중론
마두로 체포 이후 열린 백악관 회동, 기대와 경계 교차
유가 안정 카드로 베네수엘라 꺼낸 트럼프의 에너지 계산
셰브론은 즉각 증산 가능, 엑손·코노코는 제도 개편 요구

셰브론은 전 세계 2만 개 이상의 주유소를 운영하며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유통망을 갖추고 있다. / 사진출처: 셰브론 공식 계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재건을 명분으로 미국 정유업계 최고경영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대규모 투자를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 기업들에게 “완전한 안전과 보안을 보장하겠다”며 최소 1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촉구했지만, 기업들은 현재의 베네수엘라 상황을 “투자 불가능한 상태”로 평가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9일 백악관에서 셰브론, 엑손모빌, 코노코필립스를 포함한 10여 개 글로벌 석유 기업 경영진과 원탁회의 형식의 회동을 열고,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 체포 이후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이 미국 기업에 ‘전례 없는 기회’가 됐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 과거에 볼 수 없던 수준의 석유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며, 미국이 낮은 에너지 가격의 직접적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 원유를 활용해 국제 유가를 배럴당 50달러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는 구상도 재차 언급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투자가 연방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 자금으로 이뤄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정부 자금은 필요 없고, 필요한 것은 정부의 보호와 안보”라며 “미국의 거대 석유 기업들이 최소 1천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에 소극적인 기업을 향해서는 “자리를 대신할 준비가 된 기업은 얼마든지 있다”고 경고성 발언도 덧붙였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석유 판매 수익이 미국 내 법원이나 채권자에 의해 압류되는 것을 막기 위한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 명령은 미국 재무부 계좌에 예치된 베네수엘라산 원유 판매 수익을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해당 자금의 사용을 미국 정부가 관리·통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석유 기업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셰브론은 비교적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셰브론 측은 현재 베네수엘라 내 4개 합작사업에 약 3천 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즉각적으로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밝혔다. 셰브론은 현재 미국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정기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반면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는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는 “현재 베네수엘라는 투자할 수 없는 상태”라며, 재진출을 위해서는 법적·상업적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와 베네수엘라 임시 정부가 함께 제도 개편에 나선다면 조건이 갖춰질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겼다.

코노코필립스 역시 “지난 25년간 상실된 산업 역량을 빠르게 복원할 기회가 있다”면서도, 베네수엘라 정부가 회사에 약 120억 달러의 채무를 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투자 전 해결 과제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자산 몰수 문제에 대해 “과거는 보지 않겠다”며 사실상 새로운 출발을 강조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로 평가되지만, 지난 20여 년간 국유화와 투자 위축, 인프라 노후화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미국 정부는 최근 베네수엘라 원유를 사실상 장기적으로 통제하고, 압류한 원유를 매각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수익을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가디언은 외국의 군사·정치적 개입이 단기적으로 석유 생산 회복을 이끌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안정한 결과를 낳아온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원유 시장이 이미 공급 과잉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베네수엘라 사태가 에너지 시장에 미칠 영향 역시 불확실하다는 분석이다.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둘러싼 미국의 구상은 속도를 내고 있지만, 투자 기대와 현지 민생 회복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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