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와 GPU의 강제 결혼, 엔비디아-인텔 협력의 의미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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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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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마켓
2025-11-06 21:50

‘구원투수’로 나선 엔비디아

인텔, 부활할 수 있을까

AI 패권 경쟁의 분수령

엔비디아가 인텔에 50억 달러(약 6조 9천억 원)를 투자했다. 그 자체로도 놀라운 소식이지만, 더 충격적인 건 ‘누가 누구를 살리는가’라는 질문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한때 반도체 산업의 상징이자 미국 기술 패권의 주역이었던 인텔이 이제는 엔비디아의 손을 잡고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번 협력은 AI 인프라와 PC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다. 인텔은 데이터센터용 맞춤형 칩과 엔비디아 기술이 결합된 PC 칩을 생산하고, 엔비디아는 자사의 AI·가속 컴퓨팅 스택을 인텔 CPU와 결합해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한다. 한마디로 ‘CPU와 GPU의 강제 결혼’이다.

‘구원투수’로 나선 엔비디아

​엔비디아의 투자는 단순한 지분 매입이 아니다. 사실상 인텔에 대한 신뢰 회복 프로젝트다. 인텔은 모바일 전환기에 실패했고, AI 붐에서도 완전히 뒤처졌다. 지난해 190억 달러(약 29조 4천억 원) 손실, 올해 상반기 37억 달러(약 5조 1천억 원) 적자, 여기에 2025년까지 전체 인력 4분의 1을 줄여야 하는 처참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 정부가 지분 10%를 확보하며 ‘공적 자금식 구제’를 단행했고, 이번에는 민간 부문의 최강자 엔비디아가 직접 뛰어든 셈이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을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 반도체 생태계 전체의 균형과 국가 안보 전략이 맞물린 행보다.

엔비디아의 계산된 선택

​물론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이 동맹은 필요하다. 자사의 GPU 독주 체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화웨이를 중심으로 AI 칩 자립을 가속화하고 있고, 미국 정부는 자국 내 제조 역량 강화를 강하게 요구한다.

​지금까지 엔비디아는 TSMC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제2의 제조 파트너’를 확보할 필요성이 커졌다. 인텔의 파운드리 역량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만약 엔비디아와 손을 잡는다면 TSMC의 독점적 지위를 흔드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인텔, 부활할 수 있을까

​관건은 인텔이 이번 기회를 진정한 반전의 계기로 만들 수 있느냐다. CPU 강자로서의 자존심은 이미 무너졌고, 파운드리 경쟁에서도 삼성과 TSMC에 크게 뒤처졌다.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단순한 ‘응급처치’에 그친다면, 몇 년 안에 또다시 경쟁력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본다면, 인텔은 지금 가장 강력한 동맹을 확보했다. 세계 최고 AI 기업의 기술력과 시장 영향력을 등에 업고 다시 성장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AI 패권 경쟁의 분수령

​이번 협력은 단순한 기업 간 거래를 넘어, 글로벌 반도체 판도를 흔드는 변곡점이다. 미국은 자국 내 제조 기반을 강화하고, 엔비디아는 새로운 파트너를 얻으며, 인텔은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동시에 TSMC의 독점 체제는 흔들리고, 중국은 독자 행보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결국 이 동맹은 ‘AI 시대의 공생 관계’다. 엔비디아는 제조 파트너가 필요하고, 인텔은 생존을 위해 AI 시장 진입이 절실하다. 서로의 약점이 상대방의 강점과 맞물린 아이러니한 협력. 이 ‘기묘한 결합’이 미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