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붕괴·고물가가 촉발한 민생 위기, 이란 시위의 뿌리는 경제
리알화 급락에서 바자르 시위까지… 누적된 경제 불안의 폭발
제재 장기화·정책 왜곡이 만든 임계점, 거리로 나온 이란 경제
통화 신뢰 붕괴와 재정 압박, 이란 사회를 흔드는 경제 충격
민생 붕괴가 정치 불안으로… 이란 위기의 구조적 배경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위는 특정 정치적 사건이나 구호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장기간 누적된 경제 불안이 임계점에 도달하며 표면화된 결과로 분석된다. 급격한 환율 하락과 고물가, 정책 왜곡이 중첩되면서 민생 기반이 흔들렸고, 누적된 압력이 사회 전반으로 분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위의 출발점은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였다. 이란 경제의 상징적 공간인 바자르에서 상인들이 영업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선 배경에는 리알화 가치가 사실상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자유시장 기준 환율은 최근 달러당 약 140만 리알까지 상승하며 통화의 가치 저장 기능이 크게 훼손됐다. 수입 물가는 급등했고, 원자재 조달 불확실성도 커지면서 정상적인 상거래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것이 상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환율 변동 속도 역시 이례적이다. 2025년 초 달러당 약 81만7,500리알 수준이던 환율은 불과 수개월 만에 40% 이상 급등했다. 통화 가치 하락은 즉각 수입품 가격과 생활비 상승으로 전이됐고, 중앙은행 총재 교체 등 인사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책 신뢰는 회복되지 않았다. 환율은 거시 지표를 넘어 가계와 자영업자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인식되고 있다.
환율 불안의 배경으로는 정책 운용 실패가 복합적으로 지목된다. 이란 정부는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을 병행하는 다중 환율 체제를 유지해 왔지만, 외환 공급이 위축된 상황에서의 인위적 통제는 시장 왜곡과 투기 수요를 확대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공식 환율 접근 권한을 둘러싼 특혜와 부패 논란이 반복되면서 환율 정책에 대한 신뢰는 크게 약화됐고, 자유시장 환율은 사실상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환율 급락과 고물가의 배경으로 재정 적자 보전 과정에서의 유동성 확대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제재로 세입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정부 재정이 중앙은행을 통해 뒷받침되는 구조가 지속되며, 실물 경제 여건과 괴리된 유동성이 누적됐다는 해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통화 관련 지표 공개가 제한적인 여건 속에서도 외화와 실물 자산 선호가 빠르게 강화된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며, 이는 통화 신뢰 약화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경기 위축 국면에서도 군사·안보 부문 지출이 상대적으로 유지되면서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산업·복지 부문으로의 재정 여력은 제한됐다는 지적이다. 이는 단기적인 재정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 운용의 방향성이 민생 회복보다는 체제 유지에 맞춰져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경제적 압박은 청년층의 구조적 불안과 맞물리며 시위 확산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란 청년층은 이미 만성적인 실업과 저임금, 주거난 속에서 미래 전망이 제한된 상태였다. 여기에 구매력 붕괴와 물가 급등이 더해지면서 경제적 불안은 체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빠르게 전환됐다. 시위는 특정 계층을 넘어 지역과 세대를 가로질러 확산되는 양상이다.
물가 지표는 위기의 깊이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2025년 10월 기준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 약 48.6%에 달했다. 특히 식료품과 에너지 등 필수 소비재 가격 상승 폭이 평균을 웃돌며 실질 소득 감소에 대한 체감은 더욱 컸다. 이는 단순한 인플레이션을 넘어 가계의 생존 여력이 구조적으로 훼손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의 대응은 제한적인 효과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란 당국은 일부 필수 품목을 대상으로 가구당 월 7달러 수준의 보조금 지급을 발표했지만, 월 생활비가 수백 달러에 이르는 현실과 비교할 때 실질적인 완충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 보조금만으로 환율 붕괴와 고물가의 구조적 원인을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환율과 물가 불안은 이란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외환 수입을 석유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경제 구조는 서방의 장기 제재와 국제 금융망 고립 속에서 회복력을 상실했다. 외국 자본 이탈과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이 동시에 진행되며 유동성 압박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이란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에너지 시장으로 파급되고 있다. 이란의 정치·경제 불안은 중동산 원유 공급 리스크를 재부각시키며 미국과 중국 모두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대응 역시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원유 가격과 휘발유 가격은 미국 내 체감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선거를 앞둔 행정부로서는 에너지 가격 변동성 확대를 부담 요인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 제재 조정 가능성과 이란을 둘러싼 메시지 관리 역시 중동 리스크가 국제 유가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정책적 고려의 연장선에서 해석된다.
중국의 부담은 보다 구조적인 성격을 띤다. 중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이 불안정해진 이후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높여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통계와 해상 원유 흐름을 분석하는 시장조사업체 보텍사 자료에 따르면, 2023~2024년 이란의 석유 수출 물량 가운데 약 80%가 중국으로 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중국 전체 원유 수입에서 이란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 안팎으로 분석된다.
제재 국면 속에서도 이란산 원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체 자원으로 활용돼 왔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이란 내부의 정치·경제 불안과 서방의 압박이 동시에 강화될 경우 원유 조달 경로의 제약이 불가피할 수 있다. 이러한 공급 차질은 국제 유가와 에너지 비용을 상승시키고, 원자재 가격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경제는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을 겪고 있는 만큼, 에너지 비용 상승은 경제 회복에 추가적인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란의 경제 위기는 단일 요인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환율 급락과 고물가 이면에는 제재 장기화뿐 아니라 재정 운용 방식, 정책 신뢰, 지출 구조에 대한 누적된 문제가 겹쳐 있다. 통화 가치에 대한 신뢰 약화, 민생보다 안보를 우선하는 재정 구조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국제 정치·에너지 시장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이로 인해 위기의 파급력은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