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ETF 자금 1000조원 시대…외국인 매도에도 국내 유동성이 증시 견인
PER 7배대 역사적 저평가 지속…반도체·2차전지·IT하드웨어 중심 재평가 기대

국내 증시가 2026년 하반기 들어 단순한 경기 반등 국면을 넘어 구조적 재평가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주요국 가운데 가장 강한 이익 모멘텀과 퇴직연금·ETF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자금 이동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코스피가 과거와는 다른 상승 사이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중심으로 기업 수익성 체질이 근본적으로 개선됐다는 점에서 국내 증시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증권가에서는 2026년 코스피 EPS 증가율이 반도체 실적 개선과 기저효과 영향으로 큰 폭의 개선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일부 자료에서 언급되는 ‘260% 증가’ 수치는 특정 반도체 업종 기여도를 극단적으로 반영한 추정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시장에서는 중요한 포인트를 절대 수치보다 국내 기업들의 이익 체력이 과거 대비 구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 두고 있다.
이 같은 실적 개선의 중심에는 반도체 산업이 있다. 반도체 업종은 코스피 전체 이익 증가분의 약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 확대와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성장에 힘입어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장기 공급계약 확대와 제한적인 신규 설비투자가 이익 안정성을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업황이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니라 AI 인프라 확산에 기반한 구조적 성장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 회전율은 올해 1분기 기준 9.3회로 과거 고점을 크게 넘어섰고, 삼성전자 역시 7.3회 수준까지 개선됐다. 장기 공급계약 확대와 제한적인 신규 설비투자도 수익성 안정 요인으로 거론된다.
실적뿐 아니라 자금 흐름도 증시 상승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국내 ETF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국내 ETF 순자산총액은 5월 15일 기준 466조원으로 연초 대비 169조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주식형 ETF 비중은 74% 수준이다. 특히 국내 주식형 ETF 순자산은 228조원으로 해외 주식형 ETF 순자산 130조원을 크게 상회했다. 올해 1분기 국내 주식형 ETF 자금 유입 규모는 36조원으로, 지난해 연간 유입 규모 16조원을 이미 넘어섰다.
ETF 중심으로 시장 구조가 재편되면서 수급 주체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금융투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68조원을 순매수했다. 반면 외국인과 금융투자를 제외한 기관은 각각 91조원, 30조원을 순매도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금융투자는 15조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투자자들이 직접 투자보다 ETF를 통한 간접 투자에 나서면서 금융투자가 시장의 핵심 매수 주체로 부상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ETF 확대가 대형주 중심 장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주식형 ETF 거래대금 비중은 코스피·코스닥 전체 거래대금 대비 평균 약 14% 수준이며, 최근에는 34% 수준까지 상승했다. 또한 개인 순매수 상위 50개 종목 가운데 32개가 ETF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ETF 확산이 업종 내 종목 간 주가 동조화를 높이고 개별 종목보다 업종 선택의 중요성을 키우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내 증시는 업종별로 주가 흐름에서도 뚜렷한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3개월 기준으로 보면 IT하드웨어 업종이 약 82% 상승하며 가장 강한 모멘텀을 기록했고, 반도체도 약 61% 상승하며 지수 상승을 주도했다. 지주 업종 역시 48%에 달하는 상승률을 보이며 구조적 리레이팅 기대가 반영되는 모습이다.

전력기기와 IT하드웨어, 반도체 등 AI 및 인프라 관련 업종은 연초 이후(YTD 기준) 각각 90%~140%대 상승률을 기록하며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는 140%를 상회하는 상승률로 압도적인 수익률을 기록했고, IT하드웨어와 지주 업종 역시 각각 120% 내외와 100%를 웃도는 상승세를 보이며 대형 성장주 중심 랠리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일부 업종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미디어·엔터 업종은 3개월 기준 약 30% 하락하며 조정을 받았고, 호텔·레저와 유틸리티, 건강관리 업종 역시 연초 대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며 시장 대비 약세를 나타냈다. 운송과 은행 업종도 YTD 기준 한 자릿수 또는 낮은 두 자릿수 상승에 그치며 상승장에서 소외된 모습이다.
한편 화장품, 화학, 건설 등 일부 경기민감 및 소비 관련 업종은 20~60%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중간 수준의 흐름을 보였고, 조선과 철강, 보험 업종은 10~40% 구간에서 점진적인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시장은 반도체, IT하드웨어, 지주, 전력기기 등 고성장·고수익 업종 중심으로 상승이 집중되는 동시에, 업종 간 수익률 격차가 크게 확대되는 구조적 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역시 국내 증시의 새로운 유동성 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친 규모는 968조원 수준으로 증가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퇴직연금은 연평균 약 15%씩 성장하고 있으며, 퇴직연금 내 원리금 비보장형 자산 비중은 약 30% 수준이다.
특히 퇴직연금 내 원리금 비보장형 비중은 2024년 18%에서 2026년 3월 말 29%까지 상승했다. 반면 원리금 보장형 자산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향후 주식시장으로의 추가 자금 유입 여력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401(k)의 주식 비중이 약 70% 수준이라는 점도 비교 대상으로 거론된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증시가 과거 2004~2007년 펀드 자금 유입 국면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당시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44조원을 순매도했지만 기관은 32조원, 개인은 12조원을 순매수했다. 이 시기 코스피는 약 730선에서 2000선까지 약 180% 상승했다. 현재 금융투자를 통한 코스피 순매수 규모는 시가총액 대비 약 1.2% 수준으로 당시 초기 국면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국내 증시는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재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7.7배 수준이다. 선진국과 신흥국 대비 할인율은 각각 -60%, -32% 수준으로 과거 5년 평균인 -50%, -15% 대비 할인 폭이 확대됐다. 반면 12개월 선행 PBR은 1.8배 수준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10.7배 수준으로 과거 평균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코스피 12개월 선행 PBR 1.35배는 단순 저평가 영역이라기보다, 리서치 기준 적정 PBR(약 1.17배)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향후 ROE의 추가 개선 여부가 밸류에이션 정당화의 핵심 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상승장이 단순 실적 장세를 넘어 밸류에이션 리레이팅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2005~2007년에도 순이익 증가율은 둔화됐지만 이익 안정성이 부각되며 코스피 PER이 13배 수준까지 상승한 사례가 있었다. 현재 역시 실적 성장보다 이익 안정성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제조업 부채비율은 2002년 약 120% 수준에서 2007년 80% 초반까지 하락한 이후 개선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제조업 부채비율은 약 110%, 순부채비율은 약 19% 수준으로 과거 대비 안정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비율 역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금흐름 개선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 기준 코스피 잉여현금흐름은 약 168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매출액 대비 잉여현금흐름 비율은 3.7%까지 개선됐다. 시장에서는 제한적인 설비투자와 운전자본 부담 완화가 현금흐름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배당과 자사주 매입 확대도 주목받고 있다. 2025년 자사주 매입 규모는 14.9조원으로 2024년 7.5조원 대비 약 두 배 증가했다. 2026년에는 5월 기준 이미 15.7조원 수준까지 확대됐다. 시장에서는 풍부한 현금흐름이 주주환원 확대와 자본 효율성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하반기 이후 변수도 존재한다. 미국과 한국 모두 완화적 통화정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이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국의 경우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이 우세하다는 전망이 많지만, 일부에서는 추가 인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 역시 국고채 3년 금리와 기준금리 스프레드 확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일부 선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국내 증시의 구조적 리레이팅 가능성에 보다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ETF와 연금 중심의 유동성 유입이 이어지는 가운데 AI 반도체를 축으로 한 기업 수익성 개선이 본격화되면서 업종별 선택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2026년 하반기 증권가가 제시한 핵심 투자전략은 ‘리레이팅’과 ‘실적 턴어라운드’, 그리고 ‘ROE 레벨업’으로 요약된다. 미래에셋증권은 하반기 최선호 업종으로 반도체와 지주, 소비재, 2차전지, 소프트웨어, IT하드웨어, 증권 업종을 제시하며 실적 개선과 밸류에이션 재평가 가능성이 동시에 높은 종목들에 주목했다.
리레이팅 기대 업종에서는 반도체 대형주가 최우선 투자처로 꼽혔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주가가 149.8% 상승한 가운데도 12개월 선행 PER이 6.3배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2027년 영업이익 증가율은 706.6%, ROE는 37.9%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SK하이닉스 역시 연초 대비 198% 상승했지만 선행 PER은 5.8배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2027년 영업이익 증가율은 440.4%, ROE는 52.8%로 예상됐다. 지주사 가운데서는 SK스퀘어가 AI 반도체 수혜와 자회사 가치 상승 기대를 바탕으로 주목받고 있다.
소비재 업종에서는 글로벌 K-뷰티 확산 수혜주들이 핵심 종목으로 제시됐다. 에이피알은 올해 매출 증가율이 77.5%, 영업이익 증가율이 87.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ROE는 60% 수준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달바글로벌 역시 높은 수익성과 글로벌 성장성을 바탕으로 리레이팅 기대주로 분류됐다.
유통 업종에서는 신세계와 롯데쇼핑이 저PBR 매력과 소비 회복 기대를 바탕으로 선호 종목에 포함됐다.실적 턴어라운드 업종으로는 2차전지와 소프트웨어가 제시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영업이익 흑자전환이 예상되며, 삼성SDI와 엘앤에프 역시 업황 개선에 따른 실적 반등 기대가 반영됐다.
소프트웨어 업종에서는 현대오토에버와 LG씨엔에스가 안정적인 실적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됐다. 게임 업종에서는 엔씨소프트가 대규모 이익 회복 기대 속에 턴어라운드 종목으로 제시됐다.ROE 레벨업 전략에서는 IT하드웨어와 증권주가 핵심으로 꼽혔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 대덕전자는 AI·고성능 반도체 수요 확대에 따른 수혜가 예상됐다. 증권 업종에서는 거래대금 증가와 자본시장 활성화 수혜가 기대되는 삼성증권과 키움증권이 대표 선호 종목으로 선정됐다.
시장에서는 이번 상승장이 단순 유동성 랠리를 넘어 한국 증시의 구조적 체질 변화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