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시 오른 1480원, 시장은 공포가 아니라 유동성을 봤다

유스풀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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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22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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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풀인사이트
2025-12-22 4:19

위기 신호는 잠잠한데, 돈의 방향만 바뀌고 있다
환율 급등의 원인은 공포가 아니라 선택이다
달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원화에 머물 이유가 줄었다
1480원은 경고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유동성은 넘치는데, 국내에 남지 않는다

달러로 이동한 자금의 성격을 나눠보면 흐름이 보다 분명해진다. 일부 자금은 미국 주식이나 대체자산처럼 성장과 수익을 기대하는 적극적 투자로 향하고 있다. 반면 미국 국채를 중심으로 한 채권 투자는 수익보다 방어를 중시하는 선택에 가깝다. 달러 예금과 MMF로 향한 자금은 투자라기보다 변동성을 피하기 위한 대기 자금의 성격이 강하다. 금과 원자재는 달러 자산 안에서도 체제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목적의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그래픽 : 유스풀피디아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80원을 넘어섰다. 외환당국이 연이어 안정 대책을 내놓은 직후였지만, 시장은 잠시 멈췄을 뿐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다. 환율은 다시 위로 움직였고, 1481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가격을 넘어 현재 한국 금융시장의 구조를 드러내는 신호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전통적인 위기 징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가 신용도를 반영하는 CDS 프리미엄은 안정적이고,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도 급격한 불안을 시사하지 않는다. 금융 경색이나 자본의 급격한 이탈 조짐도 뚜렷하지 않다. 그럼에도 환율만 먼저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 지금 상황의 핵심이다.

이 흐름은 ‘위기’보다 ‘유동성’에서 출발해야 이해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통화 환경은 정리되지 않은 채 유지돼 왔다. 금리는 올랐지만 통화는 본격적으로 회수되지 않았고, 그 결과 금융 시스템에는 여전히 상당한 유동성이 남아 있다. 문제는 돈의 양이 아니라, 그 돈이 향하는 방향이다.

최근 환율의 움직임은 달러 공급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달러를 사야 하는 구조가 굳어졌음을 보여준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흐름이 해외주식 투자다. 올해 들어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는 315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부 달에는 해외주식 순매수가 경상수지 흑자 규모에 맞먹을 정도로 확대됐다. 수출과 소득으로 벌어들인 달러가 다시 해외 자산으로 빠져나가면서, 환율 하락 압력은 일회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상쇄되고 있다.

통화가 줄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만 높아지면 자금은 국내 실물경제보다 해외 금융자산이나 달러 자산을 선택하기 쉬워진다. 환율은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반응하는 가격 변수다. 이는 금융 불안의 신호라기보다, 누적된 유동성이 머무를 출구를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다시 등장한 연 3%대 예금 금리 역시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금리가 ‘앞자리를 바꿨다’는 사실은 눈에 띄지만, 이를 자금의 본격적인 회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변동성이 커진 환경에서 예금은 수익 수단이라기보다 자금이 잠시 머무는 대기 공간에 가깝다. 3%대 예금은 유동성 축소의 결과라기보다, 유동성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측면이 크다.

시장 참여자들의 태도도 이를 뒷받침한다. 환율이 급등했음에도 원·달러 현물환 거래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가격은 오르지만 거래는 늘지 않는 모습은, 공포에 따른 투기적 움직임보다는 시장이 현재 수준의 환율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관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싸우는 시장이 아니라, 방향을 인정한 시장에 가깝다.

자산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유동성은 충분하지만 자산 가격은 고르게 반응하지 않는다. 과거처럼 모든 자산이 동시에 움직이던 국면은 사라졌고, 자금은 확신이 있는 곳으로만 선택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돈이 많아졌다는 사실보다, 자금의 판단 기준이 훨씬 까다로워졌다는 의미다.

이 구조가 당장의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통화가 유지되고 신용 지표가 안정적인 한, 금융 시스템의 붕괴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다만 유동성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변동성이 상시화될 수밖에 없다. 작은 정책 변화나 외부 충격에도 환율과 자산 가격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결국 지금 시장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돈이 충분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이 머물 만한 곳이 국내에 충분한가의 문제다. 환율 1480원은 위기의 출발선이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정책은 시간을 벌 수는 있지만, 자금의 방향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통화는 줄지 않았고, 그 잔여 효과는 여전히 시장에 남아 있다. 다만 그 돈은 더 이상 무작위로 퍼지지 않는다. 시장이 선택하는 ‘갈 수 있는 곳’이란 높은 수익률이 아니라, 정책과 규칙의 방향이 비교적 예측 가능한 공간이다. 환율이 다른 지표보다 먼저 움직였다는 사실은, 당장 경제가 무너질 위기라기보다는 시장이 앞으로의 상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신호에 가깝다. 이 불신은 특정 정권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정권을 거치며 정책 방향이 반복적으로 바뀌어온 과정 속에서 형성된 시장의 학습 결과다. 시장은 통화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미래를 선택한다. 지금의 환율은 공포의 결과가 아니라, 신뢰가 이동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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