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끌의 등장: 자산 불평등이 만든 선택
정책의 역설: 규제가 불러온 자본의 이동
부동산과 주식의 동조화 현상 심화
우회 대출의 확산과 금융 안정성의 균열
통합적 자본정책의 필요성과 과제

한국 자산시장이 또 한 번 기이한 변곡점에 서 있다. 과거 영끌은 집을 사기 위한 필사적 자금 동원 전략을 의미했다. 그러나 2025년의 영끌은 더 복잡하다. 집을 사기 위해 주식을 팔고, 주식을 사기 위해 빚을 내는 기묘한 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新(신)영끌 시대’다.
신용금리 6%에도 마통으로 주식 사는 사람들
코스피가 4200선을 넘어선 뒤 개인투자자의 레버리지 투자는 다시 급증하고 있다.연 6%대 신용대출, 4%대 마이너스통장 금리에도 빚을 얻어 주식에 베팅하는 흐름이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대형주에만 올 4분기 신용융자가 1조7000억원 넘게 유입됐다. 공모주 청약 역시 마이너스통장 ‘단기 빌려쓰기’가 기본 전략이 됐고, 배당주 투자에도 단기 차입이 동원된다. 투자자들은 “며칠만 쓰고 갚으면 금리 부담은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고금리 시대에도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있고, 그 해답을 ‘증시 상승률이 금리를 능가한다’는 기대에서 찾는다. 즉, 빚이 비용이 아니라 기회라는 인식이 다시 확산되는 것이다.
집값을 막으니 주식과 기타 대출로 우회
반대로 금융 완화가 막힌 부동산 시장에서는 또 다른 영끌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자금이 주식 매각·예금담보대출·사내대출·자동차담보대출 등으로 이동해 서울 아파트를 사는 데 쓰이고 있다. 올해 6~9월 서울에서 집을 산 사람이 주식·채권 매각으로 마련한 자금은 1조7167억원, 2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특히 용산·서초·강남 등 ‘한강벨트’에서는 매수 자금의 5~7%가 주식 매각대금이다. 돈을 많이 번 계층일수록 집을 ‘애셋 파킹(자산 보관)’의 최종 목적지로 본다는 뜻이다. 사내대출은 4년 새 1.5배 늘어 올해 7~10월 4839억원, 그중 주거 목적 대출이 3482억원으로 급증했다. DSR 규제를 비켜가는 사실상 “비(非)주담대 영끌”이다.
주식과 부동산의 상관계수, 0.42 → 0.74
흥미로운 사실은 두 자산시장이 서로의 움직임을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2013~2019년 코스피와 서울 아파트의 상관계수는 0.42에 불과했으나, 2020년 이후에는 무려 0.74. 이제 주식이 오르면 집도 오르고, 집이 오르면 투자자는 다시 주식을 팔아 집을 산다. 자산 간 리밸런싱이 활발해졌고, 젊은 세대는 금융 접근성이 높아 이 변동을 더 빠르게 증폭한다. 그 결과, 부동산 규제가 주식시장 상승을 부추기고, 주식시장 상승이 다시 부동산 수요를 키우는 순환적·동조적 구조가 만들어질 위험이 있다.
왜 新영끌인가 — 단일 자산으로는 부를 만들기 어렵다는 인식의 확산
현재의 영끌은 과거처럼 단순히 부동산 한 곳에 자금을 몰아넣는 방식이 아니다. 부동산에 대한 직접적 규제가 강화되고 자산 가격 상승 속도가 빨라지면서, 개인들은 하나의 자산으로는 원하는 수준의 부를 만들 수 없다는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자산 간 이동이 가속화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레버리지 활용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부유층은 주식에서 만든 수익을 다시 아파트로 옮겨 ‘안전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취하고, 중산층은 주담대 규제로 인해 집을 사기 어려워지자 주식 투자에서 수익을 창출해 부동산으로 옮겨가려 한다. 한편 청년층은 초기 자본이 부족해 주식을 사실상 유일한 자산 증식 통로로 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빚을 동원해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각종 대출이 연결되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형성되면서 새로운 영끌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정부 정책이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
현 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와 주택시장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으나, 이 둘이 서로 간섭하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하면 부동산 매입을 위한 자금이 주식 매각이나 우회 대출로 이동하게 되고, 주식시장 부양책이 성공할 경우 그 수익이 다시 서울 아파트 시장으로 유입돼 가격을 자극하게 된다. 이처럼 한 자산에 대한 규제가 다른 자산을 자극해 되레 정책 효과를 약화시키는 순환 구조가 생겨난다. 그동안 정부는 두 시장을 별개의 영역으로 보고 정책을 설계해 왔지만, 최근 상승한 상관관계와 자본 흐름의 복합 구조를 고려하면 이러한 접근 방식은 사실상 성과를 내기 어렵다.
자본 흐름을 통째로 다루는 통합 정책이 필요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규제 강화나 완화가 아니라, 자본의 전체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조정할 수 있는 ‘거시 자본관리 프레임’이다.
현재의 제도는 주담대·신용대출·사내대출·예금담보대출 등 각 상품을 개별 규율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특정 자산시장에 압력을 가하면 다른 부문으로 자금이 우회해 풍선효과를 만들기 쉽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첫째, DSR 체계의 실질적 범위를 확대해 모든 형태의 우회 대출을 포함하는 ‘총부채 총관리 개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금융회사의 사내대출, 정기예금 담보대출, 카드론 등이 부동산 매입 자금으로 활용되는 경우까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주식·부동산 간 자본 이동을 모니터링하는 ‘자산시장 상호연결성 지수’를 구축해, 특정 시점에 어느 자산이 과도하게 레버리지로 지지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상관계수의 상승처럼 시장 간 동조화가 심해질수록, 금융불안 요인은 두 시장에서 동시에 증폭된다. 이를 고려한 선제적 스트레스 테스트가 가능해야 한다.
셋째, 자본 유입이 특정 지역·특정 자산에 집중될 때 자동으로 완충장치가 작동하는 ‘지역·자산 단위의 미시건전성 규제’가 요구된다. 서울 강남·용산 등 특정 구역으로 주식 매각대금이 집중될 경우, 해당 지역의 주택담보 규제와 거래 투명성 강화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금융·부동산 정책이 엇박자로 움직이지 않도록 부동산정책·금융정책·세제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자본정책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현재처럼 부처별 정책이 따로 움직이는 구조에서는 자산시장의 동조화·레버리지 확대를 통제하기 어렵다. 자본의 이동 경로 전체를 하나의 지도 위에서 관리하지 못하는 한, 어느 한 시장만 잡거나 어느 한 시장만 부양하는 정책은 반복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