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대출 3조 달러 시대, 은퇴자산으로 번지는 월가의 투자 전략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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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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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마켓
2026-01-21 18:55

월가, 은퇴계좌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
사모대출, 낮은 투명성에도 3조 달러 시장으로 확대
한국 투자자 250조 원 해외 주식·ETF 투자, 간접적으로 사모대출 노출
IMF·무디스, 사모대출 급속 성장에 따른 금융 리스크 경고
‘연장만 하고 체면 유지’ 전략과 블랙스완 가능성, 투자자 보호 필요

2025년 9월 26일 IMF 보고서는 사모대출 시장의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 사진출처: IMF 공식 계정

미국 월가의 주요 투자자들이 은퇴자산 시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치과 영상 장비 회사 직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 그리고 블랙록 계좌를 가진 일반 투자자 모두가 조용히 월가의 가장 ‘핫’한 투자 분야인 사모대출(private credit)과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사모대출은 일반 대중이 경험하는 신용카드,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투명성이 낮고 규제가 적은 대출이다. 대출 조건, 금리, 신용평가가 공개되지 않아 규제기관의 감시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과거 소규모 금융 분야였던 사모대출은 현재 약 3조 달러 규모로 성장하며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됐다. 중소기업들은 사모대출을 활용해 설비 투자나 확장을 진행하고 있으며, 블랙스톤, 아폴로 등 대형 투자기업들에게도 중요한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아폴로 CEO 마크 로완과 블루 아울 공동 CEO 마크 립슐츠는 “유연한 자금 지원이 미국 기업 성장에 기여한다”고 주장하지만, UBS 회장 콜름 켈러허와 IMF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등은 “투명하지 않은 사모대출의 급속한 확장은 경제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사모대출 펀드가 제공하는 우선상환 대출의 감액 비율이 2022년 이후 세 배로 증가하는 등 신용 품질에 대한 불안 신호가 포착되고 있어 시장 참가자들의 경계가 커지고 있다.

현재 사모대출에는 이미 800억 달러 규모의 개인 투자금이 참여하고 있으며, 딜로이트는 2030년까지 이 금액이 2조4천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과 제도의 변화로 일반 미국인도 사모대출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미국 직장인 퇴직연금 계좌와 개인 은퇴계좌에 사모대출을 포함시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주목할 부분은 한국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현황이다.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250조 원을 넘어섰으며, 주요 투자 대상은 테슬라, 엔비디아, 알파벳, 애플 등 기술주와 나스닥·S&P500 추종 ETF다. 일부는 3배 레버리지 ETF까지 포함돼 있어, 이미 높은 수익과 위험을 동시에 감수할 의사가 있는 투자자층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투자자들이 단순히 ETF 투자로 생각하더라도, 해당 ETF가 일부 자금을 미국 사모대출에 운용할 경우 자연스럽게 한국 투자자도 사모대출과 간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표는 해외 ETF·연금 투자를 통해 투자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모대출에 간접 노출될 수 있는 구조와, 사모대출이 평소에는 안정적으로 보이다가 외부 충격 시 갑작스러운 위험으로 전이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준다 / 자료출처: 로이터, IMF, 무디스, 맥킨지, 모건스탠리 자료 종합 / 그래픽: 유스풀피디아


사모대출은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기업에 대출하는 구조다. 대출금은 직원 채용, 공장 건설, 경쟁사 인수 등에 쓰인다. 기업은 은행 대출보다 조건이 유연하고 빠르며, 투자자는 공공채보다 1.5~3% 높은 금리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1980년대 마이클 밀켄의 정크본드 이후 현대적 사모대출 산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규제 변화로 본격화됐다. 은행들이 위험 대출에서 물러나자 사모대출이 그 공백을 메운 것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사모대출 시장은 10배 성장했으며, 모건스탠리는 2020년 2조 달러에서 2025년 초 3조 달러로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사모대출 업계는 일반 투자자 참여를 ‘선교적 과제’라고 포장한다. 아폴로 CEO 로완은 호주, 이스라엘, 멕시코처럼 은퇴계좌에 사모자산을 허용하는 국가에서는 투자 성과가 40~50% 더 높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업계 내부에서는 기존 투자자들의 자금이 이미 포화 상태라, 더 큰 수익을 위해 일반 투자자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글로벌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NBFI) 간 상호 연결성이 확대되고 규제가 덜한 사모대출 시장의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전통적인 은퇴계좌에는 법적으로 사모자산 편입이 가능했지만, 법적 책임 문제와 높은 수수료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말 미국 직장인 퇴직연금 계좌(401(k)) 투자자의 대체자산 접근성을 확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블랙록 CFO 마틴 스몰은 2026년 1분기 중 규제와 의회 차원의 관련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사모대출의 핵심 위험은 ‘비공개’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실시간 가격이 없어 투자자는 부실 대출을 모른 채 은퇴자금에 포함할 수 있다. 공공채와 달리 신용평가 기관의 평가가 제한적이고, 일부 사모 신용평가 기관은 분석가 대비 과도한 평가 건수를 산출해 SEC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모대출이 일반 투자자에게 부실 자산을 전가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사모대출 시장에 소매 투자자들이 급격히 유입되는 현상이 유동성 리스크와 자산 품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반면 수익률 비교는 어렵다는 점에서 ‘높은 수익’이라는 주장도 검증하기 힘들다. 옥스퍼드 경제학자 루도빅 팔리푸는 “투자자가 수천 페이지의 자료를 받지만 전반적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정보 표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경기 침체나 기업 부도율 상승 시 사모대출의 부실 위험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드 보도에 따르면 일부 기업은 기존 대출과 이자 상환을 위해 실제 상환은 이루지 않고 만기만 연장하며 부실을 감추는, 이른바 ‘연장만 하고 체면 유지’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금융 전문가들은 사모대출이 은행처럼 단기간에 붕괴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하지만, 추가 레버리지와 은행과의 연계로 인해 극단적 상황에서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로 인해 사모대출이 예기치 못한 금융 위기를 초래하는 ‘블랙스완’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 정보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주요 은행들도 사모대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며 시장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앞으로 일반 투자자가 은퇴계좌를 통해 참여하면서 사모대출 시장이 보다 안정적이고 장기 수익형 시장으로 정착될지, 아니면 새로운 금융 위험으로 자리할지는 미지수다.

한국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현황과 ETF 투자 구조를 고려하면, 이미 높은 수익과 위험을 감수할 의사가 있는 250조 원 규모 투자자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모대출과 같은 대체자산이 장기적으로 관심을 받을 가능성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