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 1조 원 급증·환율 1,460원 돌파…불안한 낙관론 속 흔들리는 코스피 전망”

이성철 기자
Icon
입력 : 2025-11-11 19:02
Icon
국내·경제비즈니스
2025-11-11 20:09

코스피 4200 시대, 빚투의 그늘이 짙어진다
일주일 만에 1조 폭증 신용대출의 향방
부동산 규제가 밀어 올린 신용대출 수요
증권사 신용융자 사상 최대 반대매매 경고등
원달러 환율 7개월 만의 최고치 불안 커진 외환시장
탐욕과 공포 사이에 선 개인투자자들의 딜레마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 4,200선을 돌파하자, 개인투자자들의 심리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상승의 이면에는 ‘빚투(빚내서 투자)’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주요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이 불과 일주일 만에 1조 원 넘게 불어나며 4년 만의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환율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내년 코스피 전망치는 증권사마다 4,500에서 7,500까지 극단적으로 갈렸다. 투자 심리가 달아오르는 가운데, 시장은 뜨거운 ‘탐욕’과 차가운 ‘경고’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1주 만에 ‘1조 원 폭증’…신용대출이 증시로 향하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 신용대출 잔액은 7일 기준 105조 9,137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104조 7,330억 원)보다 1조 1,807억 원 늘어난 수치다. 불과 1주일 만에 10월 한 달간의 증가폭(9,251억 원)을 넘어섰다. 특히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1조 659억 원 늘어 전체 증가분의 90%를 차지했다. 이는 개인들이 담보 없이 신용 한도 내에서 자금을 빌려 주식 매수에 활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증시 랠리가 이어지자 개인투자자들은 레버리지(차입) 투자를 통해 추가 수익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11월 3~7일)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7조 2,638억 원을 순매도했지만, 개인은 7조 4,433억 원을 순매수하며 매수세를 주도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AI 산업 과열 우려로 주가가 단기 조정을 받았지만, 개인들은 이를 ‘저가 매수’ 기회로 인식했다”며 “마이너스 통장을 통한 투자금 유입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규제도 ‘신용대출’ 수요 밀어올려

주택담보대출 문턱이 높아진 것도 신용대출 증가의 배경이다. 정부는 지난달 15일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한도를 최대 2억 원까지 축소했다. 이에 따라 “집을 사거나 전세자금을 마련하려는 소비자들이 신용대출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금융권에서 잇따르고 있다.
한 은행 지점장은 “과거처럼 주택담보대출이 충분히 나오지 않자, 사내 대출이나 신용대출로 자금을 맞추는 경우가 늘었다”며 “대출 수요의 방향이 주택에서 신용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신용융자 ‘역대 최대치’…반대매매 위험 고조

‘빚투’ 열기는 증권사로도 번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7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6조 2,165억 원으로, 2021년 9월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흘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투자 과열을 방증했다. 신용융자란 투자자가 보유 주식 등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려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주가가 하락할 경우, 증권사가 담보 비율을 맞추기 위해 강제로 주식을 매도하는 ‘반대매매’가 잇따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신용거래 자금이 반도체와 자본재 업종에 편중돼 있다”며 “이들 업종은 코스피 내 비중이 높아, 주가가 하락할 경우 반대매매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지수 전체가 출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원·달러 환율 1,463원 돌파…7개월 만의 최고치

국내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또 하나의 변수는 환율이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1.9원 오른 1,463.3원으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 4월 9일(1,481.1원) 이후 7개월 만의 최고치다. 일본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움직임이 엔화 약세를 자극했고,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 업무정지) 종료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달러 강세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아시아 통화 전반이 약세로 돌아섰고, 원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 외환전문가는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 개인투자자들의 신용투자 종목이 급락하며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내년 코스피, 증권사 전망 ‘천차만별’…4,500 vs 7,500

증권사들이 내놓은 내년 코스피 전망치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가장 낙관적인 곳은 KB증권(최고 7,500), 가장 신중한 곳은 키움증권(최고 4,500)으로, 무려 3,000포인트의 격차가 발생했다. 신한투자증권은 5,000, 한국투자증권과 유안타증권은 4,600선을 제시했다. 낙관론자들은 “국내 증시가 해외 주요 시장에 비해 여전히 저평가돼 있으며, 반도체 업종의 실적이 뒷받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신중론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강화 가능성과 인플레이션 재점화 위험이 하방 리스크”라고 경계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전망치는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일 뿐, 절대적인 예측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단순한 수치보다 어떤 가정과 분석을 바탕으로 했는지를 살펴야 합리적인 투자 판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불안 지표 ‘3분기 연속 상승’…“빚투, 체력보다 커졌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금융취약성지수(FSI)는 32.9로, 전 분기(31.9)보다 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3분기 연속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빚투 열풍이 개인 재무건전성에 심각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금융권 전문가는 “20~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압박감이 확산됐다”며 “주가 조정 시 심리적·재무적 충격이 커 회복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탐욕과 공포’의 줄다리기

코스피 4,000 시대는 개인투자자들의 자신감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시스템 리스크의 불씨도 품고 있다. 신용대출과 신용융자가 동시에 급증하고, 환율은 고점을 향해 치솟고 있다. 증시 전망은 낙관과 불안이 교차하며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 금융취약성지수는 32.9로,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세 분기 연속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심리가 청년층 빚투를 자극하고 있다”며 “금리 상승기 속 레버리지 투자는 한순간의 조정에도 치명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른 뉴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