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군사·기술·공급망 연계한 대중국 견제 체계 구체화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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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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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025-12-14 4:44

전진 배치 줄고 훈련·인프라 확대…PDI 예산 구조 변화
군사·기술·공급망 묶은 美 대중국 경쟁 전략 가시화
NDAA 통과 후속…인도·태평양 억지 예산 100억 달러
병력 증강 대신 대응력·회복력 강화에 무게
국방 예산 속 ‘중국 억지’ 전용 분류 예산 확대

2026회계연도 총예산은 전년 대비 약 6% 증가했으며, 연합 연습·훈련·실험·혁신(③)과 미군 대응력·회복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 투자(④)는 각각 28%, 86% 증가해 비중이 확대됐다. 반면 미군 전력의 물리적 전진 배치와 주둔 유지 성격의 항목(①)과 물류·사전배치 관련 항목(②)은 각각 24%, 55% 감소했다. 이는 병력 증강보다 훈련, 기지 생존성, 작전 지속 능력 등 질적 전투력 강화를 중시하는 전략 전환을 반영한다 / 출처: 미 국방부 FY2024~FY2026 예산 자료 및 NDAA 수권, 국방부 예산 계획(PDI) 기준 / 그래픽 : 유스풀피디아

미국이 국방, 첨단 기술, 공급망 정책을 연계한 대중국 견제 전략을 제도적·재정적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미 의회가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키고, 국무부가 반도체·AI·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체를 출범시키면서 군사와 경제안보를 결합한 대응 체계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NDAA 통과…중국 견제 관련 조항 포함

미 연방하원은 최근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가결했다. NDAA는 국방 정책과 예산 집행 권한을 승인하는 연례 법안으로, 미 국방부의 전략 방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성격을 갖는다. 이번 NDAA에는 중국과 관련된 기술·안보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조항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트럼프대통령이 중국의 인공지능(AI) 및 군사·안보 관련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거나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미국 자본이 중국의 전략 기술 역량 강화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로 평가된다.

PDI 예산 100억 달러…전진 배치보다 훈련·인프라 비중 확대

NDAA와 함께 공개된 국방부 예산 자료를 보면, 인도·태평양 억지 구상(PDI) 관련 예산은 2026회계연도 기준 약 100억 달러로 편성됐다. 이는 전년 대비 약 6% 증가한 규모다. PDI는 별도의 독립 예산 계정이 아니라, 전체 국방 예산 가운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억지와 직결되는 사업을 묶어 분류한 것이다.

2026회계연도 미국 국방 예산이 약 8,800억 달러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PDI는 그중 일부를 차지하는 특정 목적 예산에 해당한다. 항목별로는 변화가 뚜렷하다. 병력과 장비의 물리적 전진 배치를 의미하는 ‘현대화되고 강화된 존재감’과 물류·유지보수 및 사전배치 예산은 감소한 반면, 연습·훈련·실험·혁신 분야 예산은 증가했다.

여기서 현대화되고 강화된 존재감은 병력 수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예컨대 A-10과 같은 구형 전력의 비중을 줄이고 F-35 등 고성능·다목적 전력을 중심으로 억지력을 유지하는 주둔 개념을 의미한다. 대규모 지상군을 상시 배치해 충돌을 억제하던 과거의 ‘인계철선’ 모델보다는, 공군·해군 전력을 기반으로 한 기동성과 즉각 대응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주둔 방식이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군의 대응력과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프라 개선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이러한 변화와 맞물린다. 이는 단순한 병력 증강보다는 훈련, 작전 실험, 기지 생존성 강화 등 실제 전쟁 상황에서 작동하는 역량 확보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예산 구조가 조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습·훈련·실험·혁신 예산 증가는 단순한 훈련 횟수 확대가 아니라, 실제 전쟁 상황을 가정한 연합 작전 실험과 전술 검증에 투입되는 비용이 늘었다는 의미다. F-35를 중심으로 한 유·무인 복합 전투, AI 기반 지휘통제, 분산 기지 운용 등 새로운 전쟁 방식이 훈련을 통해 반복 검증되고 있으며, 이는 병력 증강보다 ‘작동하는 억지력’을 확보하려는 방향 전환으로 해석된다.

경제안보 축에서도 협력체 출범…‘팍스 실리카’

군사 영역과 병행해 경제안보 분야에서도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한국, 일본, 싱가포르, 네덜란드, 영국,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호주 등 8개국이 참여하는 경제안보 협력체 ‘팍스 실리카’ 출범을 공식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팍스 실리카 출범과 관련해 공개한 자료를 통해, 이 협력체의 목적을 핵심광물과 에너지 투입재부터 반도체, AI 인프라, 첨단 제조, 물류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또 ‘강압적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명시했다. 공식 발표에서는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희토류와 반도체 등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감안하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성격이 뚜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자본의 중국 기술 투자 흐름에 대한 경계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미국 투자자들의 자금이 중국 AI 기업으로 유입되는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일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기반 기술 기업과 벤처캐피탈이 AI 투자를 목적으로 달러 표시 펀드를 조성하고, 미국 자본의 참여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투자 흐름이 중국의 기술·군사 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으며, 이번 NDAA의 투자 규제 관련 조항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군사·기술·공급망을 하나의 경쟁 틀로

미 국방부는 PDI를 단기 사업이 아닌 장기 억지 전략의 핵심 축으로 운용하고 있다. PDI 예산은 매 회계연도 국방 예산 전반에 흡수돼 조정되는 구조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전략 경쟁을 상시적 전제로 한 체제임을 보여준다.

NDAA를 통한 국방 정책 승인, PDI 예산 구조 조정, 팍스 실리카 출범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조치는 군사력, 첨단 기술, 공급망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안보 경쟁 영역으로 관리하려는 미국의 접근이 제도적·재정적 기반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이 단기 대응을 넘어 중장기 경쟁 체제로 고착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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