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질서 부정·본토 우선… 전후 미 국방 전략과의 단절
동맹은 ‘추상 개념’… 미 국방 전략의 급격한 방향 전환
서반구 고립주의 회귀, 한미 동맹에도 파장
북한 억제 책임 한국에… 주한미군 역할 축소 시사
전작권 전환 논의와 맞물린 미 국방 전략 변화의 그림자

트럼프 대통령의 새 국가방위전략이 지난 80여 년간 유지돼 온 미국 국방 정책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 국방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미국 군사안보 전문매체 디펜스원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가 최근 공개한 국가방위전략은 전후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 질서와 가치 외교에서 벗어나, 자국 중심의 방위와 서반구 고립주의로 회귀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략 문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미 본토가 안전하던 시절을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하며, 해외 개입과 정권 교체, 국가 재건을 종식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성향 싱크탱크 소속 국방 전문가는 해당 전략이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부정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미국 사회의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의 미국 역할 확대를 지지했으며,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60% 이상이 국제적 관여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전략은 전후 미국 외교·안보의 핵심이었던 자유민주주의 가치 확산과 동맹 협력을 ‘공허한 추상 개념’으로 규정하며, 민주·공화 양당이 수십 년간 유지해 온 국방 기조를 전면 부정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실상 기존 국가안보 전략에 대한 단절 선언으로 평가하고 있다.
보도는 이번 전략이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국방 전략과도 상충된다고 분석했다.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동맹과 국제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한 완충 역할을 했던 참모들이 사라졌고, 전략 전반이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새 국가방위전략 문서에는 대통령 이름이 약 47차례 등장하며, 국방장관의 서문까지 포함하면 50차례가 넘는다. 이는 과거 전략 문서와 비교해 매우 이례적인 수준이다.
전략의 핵심은 본토 방어와 서반구 방위다. 전략은 이른바 몬로주의로의 회귀를 명시하며, 서반구 내에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확고히 해 외부 세력이 군사 거점을 구축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보장도 새롭게 포함됐다.
하지만 이러한 고립주의적 접근은 전략 내부에서도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략 문서는 사이버 공격과 미사일 위협으로 인해 더 이상 대양이 안전장벽이 될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반구 중심 방어로 회귀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략은 해외 개입 종식을 선언하면서도,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와 이후 안정화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역시 최종 문서에서는 빠졌으며, 대신 러시아, 이란, 북한 위협만 별도로 기술됐다.
국내 치안과 국경 통제 역시 국방부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됐다. 국방부는 국토안보부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병력과 감시 자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일부 주와 도시에서는 이민 단속 과정에서 군 병력이 배치되기도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군이 본래 법 집행 임무에 최적화된 조직은 아니라며, 관련 기관에 대한 예산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략은 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 우산에 무임승차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은 크게 증가했으며, 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는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특히 독일과 영국, 캐나다는 국내총생산 대비 지원 규모에서 미국을 상회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 문서는 이러한 맥락을 반영하지 않은 채 기존 동맹을 일괄적으로 실패 사례로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가방위전략이 일회성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차기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국방부를 포함한 행정부 전반에서 상당한 정책 수정 작업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 안보 현실을 고려하면, 이 같은 변화가 설령 일시적 조정에 그친다 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미 국방부는 북한 억제의 1차적 책임을 한국이 담당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식 문서에 담았고, 이는 주한미군의 역할이 점진적으로 축소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미 공격헬기 전력 철수 등 일부 전력 조정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한반도 미군 구조가 한 번 축소 국면에 들어설 경우 향후 미 행정부 교체만으로 이를 원상 회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특히 미군은 육해공군은 물론 특수전, 사이버, 우주 영역까지 통합 운용하는 다영역 전력을 갖춘 군대로, 이러한 체계를 실제 전시에 지휘·통제하는 것은 단순한 지휘권 이양 이상의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 전쟁은 단일 작전이나 제한적 군사 행동과는 차원이 다른 총력전 양상을 띠게 되는데, 현재 한국군의 공중 침투 전력, 해상 원거리 타격 능력, 전략 정찰과 미사일 방어, 군수·병참 역량은 미군 전력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구조다. 이 같은 조건에서 한국군이 전시 연합작전을 주도한다는 구상은 현실적 검증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여기에 더해 현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임기 내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작권 전환이 상징적 주권 문제나 정치적 선언의 영역이 아니라, 실제 전쟁 억제와 승패를 좌우할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국방 전략이 본토 방어와 전략적 선택과 집중으로 이동하는 국면에서, 한국이 충분한 준비 없이 전작권 전환을 서두를 경우 오히려 한미 연합 억제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 국방 전략이 요구하는 ‘책임 분담’과 한국 내부의 전작권 환수 논의가 맞물릴 경우, 한미 연합지휘 구조와 주한미군의 위상, 나아가 한반도 전구의 전략적 중요성 자체가 재정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 안보 정책 전반에 대한 보다 냉정하고 장기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국방 정책의 급격한 방향 전환이 국제 안보 질서와 한반도 안보에 미칠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의 보다 냉정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